[곽명동의 씨네톡]‘어느 가족’, 시간이 흘러 그렇게 가족이 된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그의 말처럼 지난 10여년간 천착해온 가족영화의 집대성으로 보인다. 이 영화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폭풍이 지나가고’의 테마가 모두 녹아있다. 그는 핏줄이 아니라 시간, 폐쇄가 아니라 개방, 떠난 사람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이 이해와 배려로 보듬는 공동체가 또 다른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연금과 죽은 남편의 위로금으로 연명하는 할머니(기키 기린), 좀도둑질로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 오사무(릴리 프랭키), 세탁소에서 옷에 든 물건을 훔치는 아내 노부요(안도 사쿠라),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야카(마쓰오카 마유), 오사무에게 좀도둑질을 배우는 소년 쇼타, 부모에게 학대 당하던 소녀 유리는 가난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어느날 쇼타가 도둑질을 하다 붙잡히면서 경찰의 추궁이 시작되고, 오사무 부부의 비밀이 드러나 가족은 위기에 빠진다.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이 버려졌듯, ‘어느 가족’의 구성원들도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숨어 지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죽은 부모의 연금을 부정하게 수급받던 가족의 체포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일본 경제의 그늘진 곳에서 영화의 싹을 틔워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는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이 영화의 테마와 가장 잘 맞는다. 6년만에 산부인과에서 아들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유다이(릴리 프랭키)는 “아이에게는 시간이지”라는 충고를 건넨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았던 릴리 프랭키는 ‘어느 가족’에서도 쇼타와 시간을 켜켜히 쌓아올리며 가족의 끈을 이어간다. 결국 이 영화는 쇼타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한 남자의 성장담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세 자매는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갈 곳이 없어진 배다른 막내(히로세 스즈)를 데려온다. 네 자매는 아버지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서로 가까워진다.‘어느 가족’의 구성원들도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그를 추억하며 살게된다.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남는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3류 소설가 출신의 사립탐정 료타(아베 히로시)는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철이 덜든 아버지다. 주위에서 보면 딱한 인생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료타의 삶을 통해 하찮은 인생은 없다고 말한다. ‘어느 가족’의 구성원들은 단순한 ‘좀도둑’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모두 따뜻한 정과 사랑을 품고 있다. 하자가 있고, 다소 부족하더라도 모든 인생은 저마다 소중하다.

‘어느 가족’의 구성원들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할머니부터 새로 합류한 유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처입은 사람들이다. 잡동사니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좁은 집에서 따뜻한 체온으로 서로 생채기를 핥아주며 행복한 가족을 이룬다. 좁은 지붕 탓에 불꽃놀이를 볼 수 없었던 가족들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함께 하늘을 바라본다. 볼 수는 없었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가족은 ‘함께 하는’ 존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때마다 기차가 지나는 곳을 찾는다. 위에 열거한 영화들은 예외없이 기차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기차는 시간의 흐름을 뜻한다. 그 기차는 “고마워”라는 경적을 울리며 달린다(할머니와 쇼타가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고마운 마음을 품은 시간이 흘러 그렇게 가족이 된다.

[사진 = 영화 스틸컷]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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