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A조: 골로빈 이동과 체리셰프 투입 효과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막전 참패는 아시아 국가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음처럼 들렸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올라가면 얼마나 위험한 지 보여준 경기이기도 했다. 상대는 개최국 러시아였고 신체 조건에서 열세에 놓인 사우디가 초반부터 앞으로 달려 나갈 거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후안 안토니오 피치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여러 차례 실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날 사우디는 조직적으로 매우 느슨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수비 붕괴로 이어졌다. 경기 후 피치 감독의 인터뷰처럼 러시아가 잘 했지만, 사우디가 더 못한 경기였다.

(러시아 4-2-3-1 포메이션 : 1아킨페프 – 2페르난데스, 3쿠테포프, 4이그나셰비치, 18지르코프 – 11조브닌, 8가진스키 – 17골로빈, 19사메도프, 9자고예프(전반21” 6체리셰프) – 10스몰로프 / 감독 스타니슬라브 체르체소프)

(사우디 4-1-4-1 포메이션 : 1알마요프 – 6알부라이크, 5오마르하우사위, 3오사마하우사위, 13알샤흐라니 – 14오타이프 – 7알파라지, 17알자심, 18알도사리, 8알셰흐리 – 10알살라위 / 감독 후안 안토니오 피치)

러시아는 스몰로프 아래 자고예프를 섀도우스트라이커로 배치한 4-2-3-1 전술로 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전방 압박을 시도할 때 자고예프가 높은 위치까지 전진하면서 4-4-2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는 자고예프가 부상으로 빠지고 골로빈이 전방으로 이동하면서 더 뚜렷해졌다.

사우디는 오타이프를 수비형 미드필더에 배치하고, 측면에 포진한 알도사리, 알셰흐리의 돌파를 활용한 전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공격 패턴이 너무 단조로웠고, 패스를 통한 빌드업보다 개인 능력에 의존하면서 러시아의 조직적인 수비를 뚫는데 실패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날 경기는 시작부터 매우 빠른 템포 속에 진행됐다. 역습과 역습이 충돌했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실수를 한 쪽은 사우디였다. 러시아가 간결하게 공을 앞으로 전달했다면, 사우디는 이상하리만큼 짧은 패스에 집착했다. 그것도 대부분 후방 빌드업에 집중됐다. 결국 사우디 수비에서 패스 실수는 러시아의 역습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균형이 깨졌다.

선제골은 세트피스 이후 위치 선정에 실패한 사우디의 실수에서 비롯됐다. 알렉산드르 골로빈의 크로스가 워낙 정교하기도 했지만, “습관적으로 상대 선수를 놓친다”는 이영표 KBS 해설위원의 말처럼 사우디는 코너킥 이후 계속된 러시아의 공격 찬스에서 ‘사람’은 놓친 채 ‘공’만 쳐다보다 헤딩골을 허용했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터진 러시아의 선제골은 사우디를 더욱 올라오게 만들었다.

재미있는 건 전반 21분 자고예프 부상 이후 러시아의 변화다. 체르체소프 감독은 자고예프 대신 데니스 체리셰프를 투입했다. 그리고 왼쪽에 있던 골로빈을 자고예프 자리로 이동시켰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4-2-3-1보다 4-4-2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왼발잡이인 체리셰프는 골로빈보다 직선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스몰로프 옆으로 이동한 골로빈은 기동력과 스피드를 앞세워 역습의 선봉에 섰다.

러시아의 압박이 거세지자, 사우디는 빌드업 과정에서 실수를 남발했다. 전반 43분에도 사우디의 패스가 하프라인 근처에서 끊겼고, 골로빈이 빠르게 공을 따낸 뒤 사우디 수비를 한쪽으로 몰고 쇄도하던 조브닌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그리고 공은 조브닌을 거쳐 왼쪽에서 빠르게 올라온 체리셰프가 잡은 뒤 수비수 2명을 따돌리고 추가골을 터트렸다.

자고예프의 부상에서 비롯된 골로빈의 전방 이동은 러시아에겐 신의 한 수였다. 그는 무려 5번의 득점 기회를 창출했고, 4번의 태클과 3번의 가로채기로 러시아 역습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후반 26분에도 정확한 크로스로 교체 투입된 주바의 헤딩 추가골을 도왔다. 사우디는 전방에서 좌우로 폭넓게 움직이는 골로빈을 아무도 견제하지 못했다. 이는 사우디가 중원에 5명을 두고도 최종 수비와의 간격 유지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골로빈의 활동량은 사우디의 후방 빌드업을 무너트린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끊임 없이 압박하고 달려드는 그의 전방 압박에 사우디 수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후방에서 수 차례 패스 실수가 나온 이유다. 자고예프가 있어도 러시아가 이겼을 확률이 높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고예프가 나가고 골로빈이 올라오면서 러시아의 역습은 완성됐다.

[사진 = AFPBBNEWS, TacticalPAD]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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