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원의 프리즘] '나의 아저씨' 나의 후계동은, 어른은 어디에

[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내게도 '후계동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17일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극본 박해영 연출 김원석)는 냉소적이고 차가운 톤으로 시작했다. 깨진 아스팔트보다 더 차갑게 마음을 꽁꽁 닫아버린 이지안(이지은/아이유)과 아스팔트처럼 점차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한 남자 박동훈(이선균)의 만남은 악연으로 맺어졌다.

만나서는 안될 사이로 처음 얽혔다. 지안은 동훈을 회사에서 내보내는 조건으로 준영(김영민)에게 돈을 요구했고, 동훈은 맥을 못추리고 당하기 일쑤였다. 사건은 점점 꼬여갔고, 아이러니하게도 불법 도청을 하면서 지안은 동훈의 진심과 인간미를 읽었다.

동훈은 지안을 '이상하다'고 치부하는 삼안E&C 회사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건축구조기술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안전을 중시해야 했지만, 자신의 삶은 곧 무너져내릴 건물처럼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 속에서, 도움 요청도 하지 못하고 사그러져 가는 들꽃 같은 지안의 존재는 '도와주고 싶은' 대상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의 인생에도 큰 의미다. 사그러질 법한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됐을 때, 이 인생은 한 번은 힘을 빡 주고 다시 살아볼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뭐든지 순리대로 살아가는 동훈에게 지안은 예측 불가했던 등장이었지만 동훈을 심폐소생한 인물이기도 하다.

동훈 뿐만이 아니다. 그의 형 상훈(박호산)과 기훈(송새벽)은 각자 자신이 걸어온 반 백년의 인생을 한탄한다. 그동안 '먹고 싸기'만을 반복했던 인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훈의 회사 여직원인 지안에게 서툴지만 든든한 어른이 되어주겠노라며 위험한 밤길을 함께 걸어준다.

상훈과 기훈, 그리고 후계동 조기축구회 사람들은 지안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그의 할머니 장례식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특히 상훈은 그동안 여행을 가기 위해 모아놨던, 방바닥 안에 숨겨놨던 돈을 모두 찾아 지안의 할머니가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하는 데 쓴다. 상훈은 스스로 "내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라며, 지안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으로 착한 일을 해 뿌듯하다고 말한다.

지안의 "파이팅"은 다소 어색하다. 지안은 회사 사람들 누구에게도 웃지 않았고 "나한테 네 번 이상 잘 해준 사람은 없었다"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지안을 돕는 데서 오히려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은 동훈과 상훈, 기훈 등 후계동 사람들의 모습은 극 초반의 차가움에서 벗어나 따뜻한 인정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모이는 술집 정희네에서 "후계! 후계! 후계! 잔 비우게!"라고 소리치며 그래도 우리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동훈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다시 동훈에게 돌아온 지안은 더이상 차디찬 아스팔트 인간이 아니었다. 동훈 또한 더이상 성실한 무기징역수가 아니라 지안에게 힘을 얻고 인생은 살만하다고, 건물의 내력과 외력의 싸움처럼 이겨낼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말한다.

'나의 아저씨'를 볼 때면 후계동, 그리고 정희네가 어딘가에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공연히 가졌다. '40대 개저씨와 20대 어린 여자'라는 논란의 프레임에 갇혀 '나의 아저씨'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앞으로도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다.

[사진 = tvN 제공]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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