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미스 리틀 선샤인’ ‘데드풀2’, 프루스트와 친하게 지내세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도대체 ‘미스 리틀 선샤인’과 ‘데드풀2’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의문을 가질 법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스 리틀 선샤인’은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막내딸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로드무비이고, ‘데드풀2’는 새로운 뮤턴트 케이블과 도미노가 합류한 19금 슈퍼 히어로 무비이니까.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두 영화는 ‘가족’과 ‘고통’의 공통 테마를 공유하고 있다(라이언 레이놀즈는 내한 기자간담회 당시 ‘데드풀2’가 가족영화라고 했는데, 영화를 보면 그가 왜 이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둘 모두 20세기폭스 작품이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 이야기다. 절대무패 9단계 이론을 팔고 다니는 아빠 리차드(그렉 키니어)는 정작 실패한 인생이고, 엄마 셰릴(토니 콜레트)은 2주째 닭날개 튀김을 저녁으로 내놓는다. 할아버지(앨런 아킨)는 헤로인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났고, 전투조종사가 되겠다는 아들 드웨인(폴 다노)은 9개월째 입을 닫고 산다.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는 게이 애인에게 차이고 자살을 기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프루스트 석학이다. 7살 막내딸 올리브(애비게일 브레슬린)가 통통한 몸매로 미인대회에 출전하자 온 가족이 따라 나선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여동생의 미인대회 참가 직전에 자신이 색맹으로 파일럿이 될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한 드웨인은 외삼촌에게 “가끔 18살까지 잠만 자고 싶어할 때가 있다”며 세상 다 산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길게 한숨을 내뱉는다.

조카의 고민을 듣던 외삼촌은 프루스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루스트는 완벽한 패배자이고, 진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짝사랑만 하는 동성애자였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말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힘겨웠던 시절이 삶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회고한다. 프랭크는 드웨인에게 “그것이 프루스트를 만들었다”고 조언한다. 행복했던 시절에는 아무 것도 배운게 없었다면서.

‘일상성의 발명가’ 알랭 드 보통도 프랭크와 같은 말을 했다. 그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책에서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법’을 알려준다. 프루스트는 천식 때문에 오전 7시에 자고 오후 4시에 일어났다. 하루 한 끼 밖에 못 먹었고, 민감성 피부 때문에 비누와 크림을 사용할 수 없었다. 기침이 심했고,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했다. 주변 사람들에겐 매일 죽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고통을 받을 때에만 적절하게 탐구적이 될 수 있다. 생각은 고통의 기원을 이해하고, 고통의 규모를 파악하고, 고통의 현존과 화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알랭 드 보통은 설명한다. 프루스트는 고통을 인내하며 20년 동안 세기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썼다. 지혜를 얻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선생님을 통해 고통없이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통해 고통스럽게 얻는 것. 프루스트는 후자가 더 우월하다고 했다.

‘데드풀2’의 각본가 렛 리즈, 폴 워닉, 라이언 레이놀즈도 프루스트처럼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법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극중 블라인드 알은 데드풀에게“고통에 귀 기울여. 고통은 역사 교사이자 점쟁이지. 고통은 우리가 누군지 가르쳐줘. 때론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지만, 조금 죽어보기 전까진 진짜 사는 게 아니지”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흡사 프루스트가 쓴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고통을 회피하기 마련이다.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삶만 살기를 희망한다. 고통의 괴로움을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프루스트, ‘미스 리틀 선샤인’의 프랭크, 데드풀이 그랬듯, 고통은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것은 삶에 더 큰 애착을 갖게 하고, 인생의 나침반을 다시 설정하도로 해주고, 타인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수 있도록 도와준다.

누구나 고통을 받지만, 아무나 교훈을 얻지 못한다. 고통을 받고 있다면, 프루스트의 가르침을 떠올려 보라. 데드풀처럼,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사진 제공 = 20세기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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