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은의 안테나] 스티븐 연, 무지보다 더한 대중 기만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연(연상엽)이 '욱일기 논란'에 거듭 사과했지만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단순 무지가 아닌, 한국 팬 기만에서 비롯된 일이다.

지난 11일 스티븐 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영화 '메이 햄'을 연출한 조 린치 감독의 어린 시절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나 이는 단순 사진이 아니었다. 조 린치 감독이 입고 있던 옷은 욱일기 디자인의 티셔츠였다.

욱일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전범기로, 일본의 군국주의를 대표한다. 즉, 침략 역사의 산물인 셈. 오랜 기간 일제의 식민침탈로 고통받아온 한국인에게는 예민한 사안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욱일기 사용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앞서 여러 국내 스타들이 욱일기에 대해 둔감한 태도를 보여 뭇매를 맞기도 했다.

스티븐 연은 한국계 미국 배우다. 그는 5세까지 한국에서 살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생활했다. 한국의 역사를 상세하게 모를 수밖에 없던 환경에서 촉발된 무지라 해도, 잘못이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과거 스티븐 연은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욱일기 디자인의 벨트를 착용했던 바 있다. 스티븐 연을 응원하던 팬들은 그의 잘못을 꼬집으며 욱일기에 담긴 참담한 역사의 단면을 설명했고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을 전했다. 이때 스티븐 연은 '실수'였을 무지를 돌아보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되짚어야 했다. 그는 당시에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또 다시 같은 실수가 반복됐다. 이번 논란에는 답했다. 영화 '버닝'(감독 이창동)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한국 활동에 물꼬를 튼 시점이기 때문. 스티븐 연은 13일 자신의 SNS을 통해 각각 영문, 한글로 된 사과문을 게재했다.

먼저 한국어로 작성된 사과문이다. "한국 역사의 참담했던 순간과 관련된 모든 메시지, 이미지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저의 부주의함으로 인해 상처 입으신 분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하더니 "인터넷상의 실수가 저의 모든 생각과 신념을 단정 짓는 것에 큰 슬픔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필요 없는 사족이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보다, 억울한 뉘앙스가 강했다. 설상가상으로 영문 사과문에서는 더욱 큰 온도차가 느껴졌다. 뒤에 붙인 사족을 길게 늘이며 글의 요지로 삼았다. 사과문이 아닌, 변명이었다.

"이번 일은, 엄지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 생각 없이 인터넷 스크롤한 것으로 상대의 성격을 판단한 문화를 보여준다. 인터넷 위의 우리 세계는 너무나 연약해서 그것으로 우리를 표현한다는 점이 너무나 슬프다"고 말했다.

국내 대중이 한국어로 된 사과문만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혹은 해외 팬들을 의식한 걸까. 한국어 사과문과 달리 영문 사과문에서는 오히려 네티즌들을 질책했다. 지적하는 한국 네티즌들을 우매한 사람으로 취급한 뉘앙스와 함께 느닷없이 인터넷 사용의 폐해를 꼬집었다. 명백한 기만에 반감 여론은 더 크게 형성됐다.

인터넷의 폐단을 언급하기 전에, 준공인에 가까운 자신의 파급력을 인지하는 게 우선이었다. 실제로 이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 해외 팬들은 "별 것 아니다. 한국 팬들이 예민"이라는 댓글로 오히려 스티븐 연을 옹호하고 있는 모양새다. 서경덕 교수 또한 "반성 없는 사과문"이라고 실망감을 밝혔다. 결국 스티븐 연은 사과글 게재 40분 만에 삭제했다.

그리고 다시 게재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이번 일이 제게는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 되었다"고 사과하며 "제가 처음에 급하게 올린 사과문이 더 많은 아픔과 실망을 드렸음을 알게 되었다"며 1차로 올린 사과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미 대중의 마음은 돌아섰다. 빠르고 깔끔한 사과와 함께 '실수'로 넘어갈 수 있던 일인데, 스스로 불을 지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통해 국내 활동에 시동을 건 스티븐 연은 줄곧 "나는 한국인"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한국에 대한 애틋함과 애정을 끊임없이 표출했다. 한국 팬들 역시 이에 화답하며 그를 자랑스레 여겼다.

대중은 기만하는 스타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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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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