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맨 오브 마스크’ ‘인사이드 르윈’, 다시 만나자는 다짐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맨 오브 마스크’의 원작소설은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 공쿠르상을 수상한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다. 정확한 불어 제목은 ‘오르부아르 라우’, 즉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이다(영어제목은 ‘시 유 업 데어 See you up there’로, 불어의 뜻을 최대한 살렸다). 이 제목엔 사연이 있다. 저자는 1914년 12월 4일 국가 반역죄로 총살형을 받은 장 블랑샤르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제목으로 삼았다.

“신께서 우릴 다시 만나게 해주시길 바라는 천국에서 만나요.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천국에서 다시 봐요.”

저자는 “불행한 장 블랑샤르를 생각할 때 내 마음이 가장 뭉클해지는 것을 여러분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는다”라고 했다. 장 블랑샤르는 자신의 마지막 말이 100년 후에 프랑스를 뒤흔든 베스트셀러와 영화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선 ‘맨 오브 마스크’로 개봉했는데, 주인공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살린 제목이다.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휴전을 앞둔 프랑스와 독일은 113고지에서 교전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한다. 전쟁에 미친 프라델 중위(로랑 라피트)는 가장 늙은 병사와 어린 병사를 정탐에 보내 뒤에서 총을 쏜 후 독일군의 소행이라며 전투를 벌인다. 무고한 희생을 발견한 알베르(알베르 뒤퐁텔)는 프라델에 의해 생매장을 당할 뻔 하지만, 에두아르(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가 극적으로 구해줘 위기를 벗어난다. 에두아르는 알베르를 구해주던 중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종전 후 마스크를 쓰고 살아간다. 세 남자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는 사회와 시대의 위선과 거짓이 축약된 ‘전쟁영웅 기념비 건립 사업’의 사기극과 맞물리며 시종 흥미롭고 긴박하게 흘러간다.

에두아르는 천재 화가였지만, 엄격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다 결국 전쟁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다양한 마스크를 디자인하고, 기념비 건립사업에 쓰이게 될 그림을 그리며(비록 사기극에 사용했더라도) 자신의 재능을 활용했다. 그는 끝까지 화가로 살았다.

원작자 피에르 르메트르가 제목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로 삼은 이유는 1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프랑스에선 200만명이 숨지고, 500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과 꿈이 저승에서라도 이뤄지길 바라는 후세대 작가의 마음이 애틋하게 녹아있다.

‘맨 오브 마스크’를 보고 코엔 형제 감독의 ‘인사이드 르윈’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1961년 뉴욕을 배경으로 가난한 포크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의 일주일간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플롯을 차용한 이 영화에서 르윈은 쓸쓸하고 고단한 포크 뮤지션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낸다.

코엔 형제는 앞뒤로 같은 장면을 배치했다. 어떤 남자가 르윈을 뒷골목으로 불러내 흠씬 두들긴다. 르윈은 무대 위의 아마추어 여성 연주가를 야유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맞는다. 남자가 택시를 타고 떠날 때, 르윈은 골목길을 기어나와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르부아르(다시 만나자)”

이 인사말에는 그 남자가 다시 돌아와 자신을 때리더라도 맞겠다는 것, 앞으로 계속 뉴욕 뒷골목에서 포크 뮤지션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에두아르 역시 권위적인 아버지와 참혹한 전쟁으로 꿈을 펼치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화가의 정체성을 유지했다(아버지는 뒤늦게 아들의 재능을 인정한다). 두 영화엔 ‘아무리 힘들어도 이 길을 걸어갈거야’라고 되뇌이는 사람에 대한 헌사가 담겼다.

다시 한번, “오르부아르!”

[사진 제공 = 미디어 소프트, CBS필름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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