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레이디 버드’, 왜 2002년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을까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레이디 버드’의 시대적 배경은 2002년이다. 오프닝신에서 레이디 버드(시얼샤 로넌)와 엄마(로리 멧칼프)는 대학 진학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인다. 이때 레이디 버드는 “2002년의 멋진 점은 앞뒤 숫자가 같다는 거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왜 2002년을 소환했을까.

‘레디이 버드’는 그레타 거윅이 노아 바움벡 감독과 공동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프란시스 하’의 프리퀄 성격을 갖고 있다. ‘프란시스 하’는 무용수를 꿈꾸는 프란시스(그레타 거윅)가 현실에서 좌절하고 안무가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이야기다. 프란시스의 고향도 레이디 버드처럼 새크라멘토였고, 뉴욕에서 생활한다. 레이디 버드도 뉴욕에 있는 대학 진학이 꿈이다. 둘은 각각 크리스틴 맥퍼슨을 레이디 버드로, 프란시스 할러데이를 프란시스 하로 이름을 바꾼다는 점에서도 닮았다(그레타 거윅 감독의 세례명은 프란시스다).

시기적으로도 들어맞는다. ‘프란시스 하’는 2012년 작품이었고, 극중 프란시스의 나이는 27살이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정확히 10년전 새크라멘토로 돌아가 2002년의 17살 레이디 버스의 통통 튀는 사춘기 시절을 담아냈다.

2002년의 불안한 미국사회 분위기도 중요하게 다룬다. 2001년 9.11 테러 이듬해에 미국은 각종 뉴스채널에서 전쟁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동성애 혐오도 극에 달했다. 극중 한 학생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질까봐 겁에 질린 채 눈물을 쏟아낸다. 실업률도 높아 실직한 가장이 많았다. 레이디 버드의 아버지는 정리해고를 당했고, 오빠는 버클리 대학을 나오고도 마트 점원으로 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디 버드는 학비가 비싼 뉴욕 소재 대학 진학의 꿈을 접지 않는다. 그는 줄줄이 낙방을 하다가 대기자 명단에 올라간 한 대학에 가까스로 합격한다.

이 영화는 엄마와 딸의 애증 섞인 관계와 고향을 떠나는 자의 상실감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면서도 17살 소녀의 간절한 꿈에 응원을 보낸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인터뷰에서 “세상에는 아직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정말 많은 실패와 거절들이 존재하니 겁먹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레이디 버드는 10년 뒤에 프란시스 하처럼 좌절할지 모른다. 그러나 프란시스 하가 물러나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했듯, 레이디 버드도 또 다른 꿈을 찾아 뉴욕 시내를 걸어다닐 것이다(실제 그레타 거윅 감독도 발레리나의 길을 벗어나 작가와 영화감독의 세계로 들어섰다).

우린 모두 과거의 ‘레이디 버드’였고, 미래의 ‘프란시스 하’일 테니까.

[사진 제공 = UPI]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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