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지슬’ ‘눈꺼풀’, 오멸 감독의 설화적 상상력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오멸 감독은 설화의 공간에서 산다. 이승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넋을 위로하기 위해선 조상의 옛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제주 4.3을 다룬 ‘지슬’에선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끌어오고, 세월호의 진혼곡을 그린 ‘눈꺼풀’에선 망자에게 노잣돈을 주는 풍습을 빌려 따뜻한 떡을 마련한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은 오백장군을 낳아 한라산에서 살고 있었다. 식구는 많고 가난한데다 흉년까지 겹쳐 끼니를 이어갈 수 없자 오백 형제들이 양식을 구하러 나간 사이 죽을 끓이다 발을 잘못 디뎌 솥에 빠져 죽었다. 오백 형제들은 그런 줄도 몰고 돌아와 맛있게 죽을 먹다가 어머니인줄 뒤늦게 알고 통곡하다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슬’에서 토벌대 군인들이 큰 솥에 돼지를 삶는 장면은 설문대할망 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마약에 취한 군인은 흙바닥을 기어다니고, 칼을 가는 군인은 부하에게 빨갱이를 모두 잡아들이라고 명령하며 이를 간다. 오멸 감독은 “광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면, 카메라는 큰 솥으로 다가가다 서서히 위로 올라가 부감샷으로 이 모습을 담아낸다.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날카로운 음악이 귓가를 울린다. 이건 마치 설문대할망이 누워 있다가 일어나 광기어린 군인들의 모습을 보고 몸을 일으켜 앞으로 벌을 내리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아닌게 아니라, 마약에 취했던 군인은 결국 솥 안에 갇히는 운명을 맞는다.

그의 설화적 상상력은 ‘눈꺼풀’에서 풍부한 상징과 함께 드러난다. 오멸 감독은 다섯 명의 스태프와 함께 무인도에 들어가 1박 2일 동안 직접 절구에 쌀을 빻아 떡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떡을 극중에서 세월호 희생자에게 주려고 하지만, 외부에서 침입한 쥐 한 마리로 인해 절구가 부서지는 일이 발생한다. 망자에게 떡을 대접하고 싶었던 노인(문석범)은 부서진 절구를 우물에 던진다. 쥐는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침입자이고, 절구는 원혼을 달래는 도구이다. 물 속에 가라앉은 절구가 세월호의 아픔과 만날 때, 관객은 저릿한 감정에 휩싸인다.

‘지슬’과 ‘눈꺼풀’은 망자를 불러내 제사의 형식 또는 태도로 한 많은 희생자의 넋을 보듬는다. 그는 설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직접 제문을 쓰고(‘지슬’), 떡을 만들어(‘눈꺼풀’) 온 몸으로 영화적 제의를 지낸다.

그의 영화는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사진 제공 =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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