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 '아마데우스' 한지상 "보편성 사랑해, 살리에리 공감하죠"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 한지상은 살리에리에게서 자신을 봤다.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사랑하지만 그로 인해 질투심을 느끼고 자신의 평범함에 괴로워 하는 살리에리의 비애. 그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나아가 우리 모두를 봤다.

한지상이 출연중인 연극 '아마데우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피터 셰퍼(Peter Shaffer)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극중 한지상은 신에게 선택 받지 못한 평범함에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했던 살리에리 역을 맡았다.

"'아마데우스'에 푹 빠져 있다"고 운을 뗀 한지상은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 하지만 '아마데우스'를 통해 2등을 들여다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소싯적 내가 느껴 왔던 나의 정서들은 살리에리에 많이 가까웠던 것 같다"며 "질투심이라는 게 되게 인간적인 것이지 않나. 살리에리만이 느낄 수 있는 질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질투심이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고백했다.

"중학교 때 반에서 매번 2등을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당시 1등 하던 친구를 이기기 위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근소한 차이로 계속 지게 되더라고요. 최고로 추격했을 때가 0.몇 점 차이였어요. 그 때의 안타까움은 잊지 못해요. 또 그 때 친한 친구가 아쉬워 하는 저한테 '그게 네 한계야'라고 했는데 그 때 상처도 잊지 못하고 있죠. 그 말을 듣고 제가 완전히 정지 화면이 됐거든요. 그 감정들이 살리에리를 연기하며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물론 2등도 쉽지 않다. 무조건 등수로 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결과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배우 세계 역시 등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과정을 중시하기는 한다. 그러나 천재성을 가진 그 누군가를 향한 갈망은 인생을 살며 결코 무시하고 지나칠 수만은 없는 자아성찰의 한 부분이다.

한지상은 "2등도 아무나 못한다"면서도 "하지만 모짜르트 같은 천재는 지구상에 몇 명 안 되지 않나. 스티븐 호킹이나 아인슈타인, 마이클 조던, 마이클 잭슨 정도 아닐까?"라고 말했다.

"사실 그 외의 사람들은 평범함을 느끼면서 살아가죠.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살리에리에게 공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평범한 분들을 대변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대중성을 사랑하고, 보편성을 사랑하죠. 물론 제게도 개성이 있고, 그 개성으로 어떻게 승부했는지 나도 내 자신을 알지만 '아마데우스'는 좀 더 거시적으로 실제 우리 삶과 인간 세계를 더 사실적으로 본다는데 의미가 있어요."

천재성을 갈망하고 자신의 평범함을 견디지 못하는 살리에리지만 환경이 달라지면서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눈이 달라진 것도 사실.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사회가 되면서 살리에리가 그토록 싫어했던 평범함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평범함이 사실은 제일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지상은 "국민의 힘이 커지고 권리가 신장되는 사회적인 변화에 맞물린 것 같다"면서도 "묘하게도 그런 부분이 오히려 살리에리에게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그대로 표출하고, 희열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한 것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과거엔 히어로를 원했고, 히어로에게 권력을 넘겨줬다면 이제는 우리가 직접 참여하며 정서와 의견을 소통하고 피력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어요. 이전에는 살리에리를 보면서 공감을 느끼고 있는데 '아마데우스를 우러러 봐야 하나?' 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나는 살리에리에게 마음이 간다'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거죠. 살리에리에게 감동 받고 위로 받는 거예요. '자신있게 표현하고 마음껏 느끼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편하게 다가가고 싶었죠."

연극 '레드' 이후로 4년만에 연극 무대에 선 한지상은 살리에리의 감정에 더 몰입하면서 연기적인 부분도 많이 풀어내고 있다. "연극을 너무 사랑하고, 학생 때 연극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연극 무대는 항상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당시 느꼈던 희열을 느끼게 한다"며 "더 윤곽이 드러나는 정서의 흐름, 감정 여행에 집중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연습할 때 이지나 연출님이 '길고 힘들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 살리에리의 몫이 크니까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 생각해봐라'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아마데우스' 원작이 갖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편하게 대중성을 섞어서 하려 했죠. '아마데우스'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다룬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사랑 만큼 동료들에 대한 사랑도 갈수록 커진다. 특히 모짜르트 역 조정석, 김재욱, 그룹 인피니트 성규는 한지상에게 진짜 살리에리의 마음을 갖게 한다.

한지상은 "다들 천재 같다. 각자 다른 개성과 매력과 천재성에 저는 황홀하게 느껴 가면서 무대에서만큼은 정말 모짜르트를 팬심으로 쳐다 보게 됐다"며 "그 셋은 정말 각자 나름의 독특한 웃음 소리와 독특한 패턴, 독특한 천재성으로 살리에리에게 복잡미묘한 팬심과 미움을 동반시킨다. 그 순간엔 한지상에게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모짜르트가 피아노 위에서 죽어가는데 그 장면이 사실 너무 우아해서 무한한 팬심이 느껴져요. 너무 황홀하죠. 극중에선 미워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지상이로서도 살리에리로서도. 또 이번에 '아마데우스'를 하면서 제 은사님인 이지나 연출님께도 너무 감사하고, 배우들한테 진짜 고마워요. 특히 작은 바람들 역 배우들은 제게 있어 너무 든든한 존재고, 존경을 표해요. 살리에리에게 식탐이 있다면 제겐 정보탐이 있는데 그 정보탐을 해결해주는 배우들이죠."

마지막으로 한지상은 '아마데우스'를 아직 보지 못한, 혹은 살리에리에게 공감을 느끼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여러분의 평범함을 저 한지상에게 사랑 받으십시오. 한지상에게서 여러분의 평범함을 사랑 받고 위로받으십시오. 기꺼이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연극 '아마데우스'. 공연시간 155분. 오는 29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한지상. 사진 =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