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쓰리 빌보드’, 분노와 용서 그리고 생각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는 세 개의 광고판, 세 명의 캐릭터로 세 가지 테마를 다룬다. 미주리 외곽 지역에 설치한 경찰 저격 광고판으로 촉발된 분노의 물결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 치다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힘을 잃은 채 서서히 용서의 강물로 흐른다. 그 끝에서 주인공은 생각에 잠긴다. 과연 분노와 증오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1. 분노

강간 살해를 당한 딸의 범인이 잡히지 않자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마을 외곽 대형 광고판에 도발적인 세 줄의 광고를 싣는다.

“내 딸이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경찰서장?”

광고가 세간의 주목을 끌면서 마을의 존경 받는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헤럴슨)와 경찰관 딕슨(샘 록웰)은 무능한 경찰로 낙인 찍히고, 마을의 평화를 원하는 이웃 주민들은 경찰의 편을 들어 밀드레드와 맞선다.

밀드레드는 윌러비 서장이 품성이 좋고 일도 잘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저격한 것은 범인이 잡히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분노를 표출해야 겨우 숨을 쉴 테니까. 그러나 과연 그의 분노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적은 한 인물은, 기억나지도 않는 어느 책에서 읽었다며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라고 무심히 말한다. 분노의 당사자에게는 그저 레토릭으로만 들릴지도 모른다. 밀드레드도 처음엔 그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분노는 처음과 다른 양상으로 변해간다.

‘포스트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마틴 맥도나 감독은 감정을 이성으로, 울분을 침착으로, 분노를 냉정으로 조금씩 바꿔나가는 탁월한 블랙코미디로 밀드레드의 심경변화를 담아낸다.

#2. 용서

딕슨은 동성애 혐오자, 인종차별주의자다. 이미 흑인을 폭행한 전력이 있었던 딕슨은 한 동성애자에게 가혹한 폭력을 가한 뒤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불운이 찾아와 화상을 입었을 때, 같은 병실에 입원 중이었던 동성애자는 그에게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그 동성애자는 분노가 또 다른 분노를 가져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윌러비는 밀드레드의 분노를 이해했고, 동성애자는 딕슨의 분노를 용서했다. 가뜩이나 병을 앓고 있는 윌러비 서장을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밀드레드에게 악감정을 품었던 딕슨 역시 격하게 끓어올랐던 감정을 서서히 식힌다. 그들은 분노의 확산을 막았다.

#3. 생각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윌러비는 밀드레드와 딕슨에게 각각 편지를 보냈다. 전자는 범인이 잡히기를 바라는 염원이었고, 후자는 더 나은 경찰이 되길 원하는 충고였다. 윌러비의 염원과 충고의 밑바탕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는 생각(이성)이 깔려있다. 분노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오직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 사고방식만이 문제를 해결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쓰리 빌보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분노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고.

[사진 제공 = 20세기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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