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더 포스트’, 쓰러진 언론을 바로 세우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1971년, 뉴욕 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로 미 전역이 발칵 뒤집힌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알려지자 정부는 관련 보도를 금지시킨다. 항상 뉴욕타임즈에 밀렸던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베트남 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지만, 회사 이사진은 감옥에 갈수도 있다고 경고하며 신문발행을 막는다. 재정난에 처한 여성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고심 끝에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는 힘이 있고 묵직하다. 47년전에 벌어진 실화인데도, 권력과 맞서는 언론인의 절실함이 온 몸으로 육박해 들어온다(이 영화는 트럼프가 당선된 뒤 제작에 들어갔다. 스필버그 감독은 ‘더 포스트’를 위해 원래 예정됐던 ‘모르타라의 유괴’ 촬영을 뒤로 미뤘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비판정신을 트럼프 시대에 되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재정적으로 휘청이는 신문사를 되살리기 위해 기업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신문사 가치가 하락하면 투자자들은 일주일 이내에 돈을 회수할 것이 자명했다. 남편이 사망한 후 급작스럽게 신문사 발행인이 된 캐서린 그레이엄은 여성인 데다 신문과 언론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만, 정의와 진실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고 회사의 운명을 건 선택을 감행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편집국장 보다 회사의 존망과 신문의 자유 사이에서 고뇌하는 발행인에 포커스를 맞춰 한 여성의 변화를 통해 진실된 언론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짜릿하면서도 뭉클하게 묘사했다.

이 영화는 두 언론인의 사명감 못지않게 지난날의 반성도 담아내며 균형을 맞췄다. 극 초반부에 캐서린 그레이엄은 벤 브래들리와 함께하는 조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다가 옆자리 테이블의 의자를 쓰러트린다. 양손에 잔뜩 무거운 서류를 들고 있던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의자를 바로 세우고 벤 브래들리의 테이블에 앉는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상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결말을 다 보고나면 이 장면을 왜 넣었는지 수긍할 수 있다. ‘더 포스트’는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할 ‘언론’(의자)을 바로 세우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포스트에 '기둥'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혼란의 시대에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들은 과거에 미국 백악관 핵심 권력과 친하게 지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후대 역사학자를 위해 문서를 작성했던 로버트 맥나라마 국방장관과 오랜 시간 동안 친분을 유지했고, 벤 브래들리는 케네디 대통령과 격의없이 지낸 사이였다. 벤 브래들리가 맥나라마를 통해 펜타곤 페이퍼를 구해달라고 요청하자, 캐서린 그레이엄은 개인적 친분을 이유로 들어 이를 거절한다. 편집국장이 비판하자, 발행인은 되받아친다.

“당신도 케네디와 친하게 지냈잖아요.”

이들은 권력을 감시해야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자책한다. 언론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들은 불면의 밤을 지새운다. 신문은 폐간될 수 있었고, 본인들은 철창 신세를 질 수도 있었다. 결국 지난날의 성찰을 통해 백악관과 맞서기로 결정하고, 펜타곤 페이퍼가 담긴 신문을 발행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데 앞장섰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스포트라이트’의 보스턴 글로브 기자도 가톨릭 사제들의 권력과 권위를 눈치보다 아동 성추행 사건을 눈감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역시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사제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해 종교권력을 갈아엎었다. 두 영화 모두 실화였고,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국방장관, 대통령, 사제와 친하게 지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실 앞에서 눈을 감고, 권력 앞에서 눈치를 보고, 독자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더 포스트’와 ‘스포트라이트’는 무심코 쓰러트린 의자를 바로 세우는 것처럼, 타성에 젖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언론이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더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보다 더 중요한 백악관의 음모를 암시하며 끝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기자는 진실을 추구해야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며 마무리한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다운 라스트신이다.

[사진 제공 = CGV아트하우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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