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산체스는 어디서 뛸까?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천문학적인 몸 값을 자랑하는 슈퍼스타가 오면 팬들은 그가 어디에서든 최고의 활약을 펼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일종의 허니문 효과로 영입에 대한 기대감이 행복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로 돌아오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폴 포그바가 세계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올드 트래포드(맨유 홈구장)로 돌아올 때만 해도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중원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포그바는 여전히 전술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의 포지션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비록 알렉시스 산체스가 포그바보다 전술을 덜 타는 선수라 할지라도, 그가 어느 위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는지에 대한 주장은 엇갈린다. 대다수가 산체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디서든 잘 한다고 말하는 건 반대로 가장 잘하는 곳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체스는 축구 선수로서 매우 다재 다능한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이탈리아 우디네세에서 주로 오른쪽 윙어로 활약했고 이는 칠레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는 안토니오 디 나탈레 아래서 역습을 시도하는 10번(처진 공격수)으로 변신했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바르셀로나 시절에는 오른쪽 윙어로 뛰면서 상황에 따라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맡기도 했다.

아스널에서도 여러 가지 포지션을 소화했다. 데뷔 시즌에는 와이드한 오른쪽 윙어로 뛰었고 대니 월백이 건강할 때는 그의 아래서 10번(플레이메이커) 포지션을 수행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지난 시즌에는 최전방 센터 포워드로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으며, 올리비에 지루가 좋은 모습을 보일 때는 3-4-2-1 포메이션에서 왼쪽 포워드로 돌아갔다. 사실상 공격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수행한 셈인데, 이것이 산체스가 어느 포지션에서든 뛸 수 있다고 믿는 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무리뉴 감독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산체스 활용법에 대해 “그는 어디에서든 뛸 수 있는 최고의 공격수”라는 말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과거 웨인 루니의 포지션에 대해 “9번(공격수)과 10번(처진 공격수)의 중간 역할을 맡길 것이다. 절대 6번과 8번(미드필더)는 되지 않을 것”이라며 확실한 선을 그었던 때와는 분명 다른 자세다. 그러면서 “내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산체스는 우디네세에 있었고, 내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할 때는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다. 나는 누구보다 산체스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무리뉴가 포그바에게 맞는 옷을 찾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은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영국의 축구전술칼럼니스트 마이클 콕스는 “왼쪽이 산체스에게 가장 적합한 위치다. 그러나 이것은 최근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마샬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마샬은 왼쪽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산체스가 그 자리에 간다면 그보다 7살이나 어리고 그와 비슷한 잠재력을 가진 마샬의 발전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리뉴에게 비판을 불러올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오른쪽에 산체스를 두는 것이 답일까.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번 시즌 라힘 스털링이 맨체스터 시티에서 와이드한 오른쪽 윙어로 뛰며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지만 그것이 산체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맨유에는 케빈 데 브라위너와 다비드 실바처럼 창의성을 제공해줄 플레이메이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맨유 포메이션에서 산체스가 오른쪽으로 오면 그의 역할 역시 매우 불분명해진다. 그 동안 무리뉴는 포그바에게 집중된 공격 작업을 분산시키기 위해 헨리크 미키타리안과 후안 마타를 함께 세웠다. 그 중 마타는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창의성을 제공했는데, 산체스가 이곳에 서게 되면 포그바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산체스는 단순한 윙어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는 아스널에서 직접 골을 넣는 스코어러로 발전했다. 그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보다 스스로 결정짓길 좋아한다.

그렇다면 산체스가 큰 경기에서 9번을 맡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콕스는 산체스가 로멜루 루카쿠 대신 최전방에 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그는 “작고 빠른 산체스는 무리뉴가 선호하는 9번이 아니다. 그는 디디에 드로그바 같은 덩치 큰 포워드를 좋아한다”면서 “펩은 산체스를 9번으로 쓰길 좋아했다. 왜냐하면 중앙과 측면이 모두 가능하고 세르히오 아구에로보다 링크 역할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제 30세에 접어든 산체스가 무리뉴 감독이 원하는 수비적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아스널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산체스는 스리백의 보호를 받으며 수비보다 공격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맨유에서는 윙어도 수비시에는 적극적으로 내려와야 한다. 그는 누구보다 수비적인 규율을 중시한다. 마커스 래쉬포드가 무리뉴 체제에서 중용되지 못하고, 미키타리안이 한 시즌 반 만에 맨유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무리뉴는 호날두에게 자유를 부여했는데, 그로 인해 무리뉴는 중요한 경기에서 왼쪽 뒷 공간이 자주 열리는 약점을 노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뉴가 호날두를 계속해서 왼쪽에 세운 건, 그러한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호날두의 결정력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산체스에게도 적용될지는 알 수 없다.

맨유는 이전에도 비싼 선수를 영입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낭비한 경험이 있다. 2001년에는 프리미어리그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후안 세바스찬 베론을 영입했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그가 후방 플레이메이커인지, 앞으로 전진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첼시로 이적시켰다. 2014년에도 앙헬 디 마리아가 엄청난 액수로 맨유 유니폼을 입었지만 루이스 판 할 감독의 기이한 포지션 실험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산체스가 위의 선수들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산체스는 어디에서 뛰든 지금의 맨유를 더욱 발전시킬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무리뉴 체제에서 산체스의 최고 능력을 끌어낼지는 물음표가 따른다. 이는 감독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무리뉴는 펩이나 안토니오 콩테 만큼 공격수 활용에 유연하지 못하다. 특히나 최근 들어 그러한 성향이 더 진해졌는데, 최적 포지션을 찾지 않고 자신의 틀에 가둔다면 산체스가 가진 진짜 능력을 모두 활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진 = TacticalPAD, AFPBBNEWS, inews]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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