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은의 삐딱하게]인공지능(AI), '1만시간의 법칙'을 비웃다

[마이데일리 = 여동은 기자] 인공지능(AI)이 '1만시간의 법칙'을 허물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를 보면 '1만 시간의 법칙'이 거론된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이와 같은 잣대를 프로바둑계에 적용해 보면 흥미롭다.

프로바둑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어릴때 기재(棋才)가 보이면 프로기사들이 사숙의 형태로 운영하는 도장에 들어가 바둑공부에 매진한다. 도장에서 하루에 10시간씩 훈련한다고 보면 한달에 300시간, 1년이면 3,600시간, 3년이면 1만 시간을 도달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1만시간이라는 것이 최소한의 기준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만시간을 바둑 공부에 쏟는다고 해서 모두 프로기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프로에 발을 들여 놓게 되는 시점도 천차만별이다. 천재기사로 꼽히는 이창호 9단과 커제 9단은 만11세, 이세돌 9단은 만 12세에 프로에 입문, 수졸(守拙, 초단을 이름)의 칭호를 얻었다. 세계 최연소 프로 입문 기사는 조훈현 9단으로 만9세에 데뷔했다.

바둑계에는 1만시간의 법칙 이외에 1만판을 복기해야 프로기사로 입문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바둑 한 판을 복기하는데 1시간 이상 소요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1만시간의 법칙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렵게 프로에 입문한 기사들의 최종 목표는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예전에는 9단에 올라 입신(入神)의 경지에 등극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기도 했으나 근래 들어 세계대회 우승 등 특별 승단으로 9단의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 10대에도 9단이 나오는 추세니까.

11세에 프로에 입문해 10대 후반에 일찌감치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커제 9단은 현재 세계바둑 최강자다. 그런 커제 9단이 지난해 인공지능(AI)와의 맞대결에서 모두 패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과의 두 점 접바둑에서도 77수만에 불계패하는 일이 벌어졌다. 인공지능(AI)은 이세돌 9단과 맞대결(당시 알파고)에서 1패를 한 이후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전승을 거두고 있다. 이제 접바둑까지 이겼으니 과연 인공지능과 프로바둑기사의 치수는 얼마나 될지 예측이 난감한 상황이다.

인공지능(AI)의 충격을 지켜 본 프로바둑 기사들은 요즘에는 수백년에 걸쳐 인간들이 만들어낸 정석을 제쳐 놓고 인공지능의 거시적인 행마를 연구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은 최근 커제 9단과의 이벤트 대국을 승리로 이끈 뒤 소감에서 "알파고와 대국 당시 나는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바둑은 인간과 인간이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더 바둑의 본질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 곁에 있다. 인공지능의 실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는데, 커제 9단 같은 훌륭한 기사가 좀 더 기량을 닦아서 인공지능을 이겨주길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프로바둑이라는 인간계에 뛰어든 인공지능(AI), 과연 '1만시간의 법칙'을 통과한 선택된 인간들이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사진=마이데일리DB]

여동은 기자 deyu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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