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 '모래시계' 강홍석 "그 시대 분들에 감사, 가슴 속 깊이 느껴야죠"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무대에선 진지하게 죽고 싶지 않아요"

뮤지컬배우 강홍석이 악역으로 무대에 섰다. 앞서 여장 남자, 사신 등 강렬한 역할 위주로 관객들을 만났던 그는 최근 다소 평범한 인물로 무게감을 빼더니 '모래시계'에선 좀 더 현실적인 악역으로 극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뮤지컬 '모래시계'는 격변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안타깝게 얽혀버린 태수, 혜린, 우석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 그리고 찬란하기만 할 것 같은 그들의 삶에 시대가 남긴 상처와 슬픔을 그린 작품. 극중 강홍석은 야망 넘치고 처세에 능한 종도 역을 맡아 태수의 고등학교 친구였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를 배신하고 혜린을 곤경에 빠뜨리는 인물로 열연을 펼치고 있다.

강홍석은 "처음에는 좀 확신이 안 섰다"고 했다. 창작 뮤지컬에 인기 드라마를 뮤지컬화 한 만큼 반신반의 하는 마음이 컸다. '지금 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도 했고, 모든 관객들을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에 걱정도 됐다.

그러나 반응은 좋았다. 관객들이 자신을 '나쁜놈'으로 봐줘 감사하다는 것. "사실 악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해본적은 처음이라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해서 놀라고 있다"고 밝혔다.

"외모가 주는 분위기도 무시 못 하잖아요.(웃음) 사실 외모에 비해 나이가 어려서 악역이 오히려 잘 안 들어 왔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결혼도 했고 어느 정도 나이도 먹었고 하다 보니 호흡이 달라지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생각해요. 악역이 주는 편안함도 사실 있어요. 평상시에 가만히 있으면 싸늘하고 무섭게 보는 분들이 많아 활짝 웃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요. 광대가 안 아파요.(웃음)"

강홍석은 각종 공연, 영화, 드라마 등에서 선배들이 연기한 악역을 보며 손발이 찌릿찌릿 할 정도였다.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고, 자신이 악역을 잘 해낸다면 관객들도 그 찌릿찌릿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재미를 느꼈다.

그는 "언젠가 한 번쯤은 깡패, 건달 역할을 꼭 해보고 싶었다. 남자들의 로망 같은 느낌"이라며 "7~8kg 정도 살을 빼고 들어갔다. 반대되는 이미지를 좋아하는데 종도는 친근함, 귀여움이 있길 바랐다. 처음부터 1차원적으로 악역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있을법한 애가 배신하고 갈등하다가 진짜 악역이 되는 과정이 그려지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 오히려 욕을 다 뺐어요. 죽을 때 일반적인 욕을 한 번 하죠. 첫번째 목표가 '친근했으면 좋겠다'였거든요. 관객들이 편안하게 봐야 해요. 실제로 칼을 찌르는데 편안하게 볼 수는 없으니 캐릭터가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관객들이 불편하면 안 된다 생각해요. 그래서 죽을 때 관객들의 실소가 나올 수 있게 의도해서 연기하죠. 진지하게 죽고싶지 않았어요."

강홍석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라도 악역인 종도를 절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더라도 방법이 잘못됐고 친구를 배신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며 "개인적으로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것만이 살 길이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이 든다. 정말 싫어하는 캐릭터라 전혀 공감이 안된다.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배신을 당한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주위에서 보긴 보잖아요.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친구 배신하고 어떻게든 발버둥 치면서 올라가기 위해 남 헐뜯는 스타일이에요. 정당한 사람이 되어야죠. 그래서 죽을 때도 그렇게 의도하고 연기하는 거예요. 나쁜놈이 쉽게 죽었으면 좋겠거든요. 짠한 느낌 전혀 느껴지지 않게, 가볍게 느껴지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배신하던 나쁜 놈 쌤통이다. 잘 죽었다'고 느끼게요. 안 그래도 작품이 무거운데 저까지 무거워질 수는 없죠."

강홍석은 오디션 제의를 받고 드라마 '모래시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생각보다 재밌고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대단하다 싶었다"며 "너무 재밌게 봐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 종도 역 정성모 선배님이 정말 얄밉게 독사같은 눈을 갖고 계시니까 진짜 존경스럽고 내가 꼭 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작품, 캐릭터 다 반신반의였지만 노래가 너무 좋았고 모든 것들이 조화로웠어요. 드라마가 유명하지 접근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죠. 물론 원작 드라마의 '나 떨고 있니',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같은 대사를 기대하고 오시는 분들은 그 대사가 없어서 실망할 수도 있지만 자신 있는건 라이브 음악이 있다는 거였어요. 심장을 울릴 수 있는 음악이 있기 때문에 유명한 대사가 없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죠."

극중 격변의 시대에서 흔들리는 청춘을 연기하는 만큼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기도 했다. "사실 학생 때 선을 넘는 행동을 많이 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부모님들 속도 많이 썩였다"며 "분노가 막 들끓었다기보다 그저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유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불현듯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길을 찾겠다고 결심했어요. 이것 저것 알아보다가 '나서서 얘기하고 눈 마주치는 것 좋아하니까 길이 있겠지' 하고 간 게 계원예고였어요. 그 때부터 정말 감사했죠. 이 직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단순하게 살았지만 아직도 뜨거우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노력이라기보다는 계속 뜨겁죠."

강홍석은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라고 했다. 또 매 작품을 만날 때마다 매번 성장하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뮤지컬 '모래시계'도 그렇다. "사실 처음엔 스쳐가는 작품일 거라고 하긴 했었는데 드라마를 보고 무대를 하고나니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 시대 살았던 분들에게 감사해요. 싸워주셔서 이렇게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어른들에 대한 생각을 가슴 깊이 해야 내 아들과 딸들이 행복하게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은데 우리 아들 딸들에겐 그런 일이 없길 바라요. 다른 먼 나라 얘기도 아니고 한국, 우리 나라 얘기잖아요. 더 공부하고 가슴 속 깊이 느껴야죠. '모래시계' 하는 모든 분들이 그런 마음이 있어요."

뮤지컬 '모래시계'. 공연시간 170분. 오는 2월 11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배우 강홍석.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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