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손맛, 평창으로 향하는 희망을 직접 밝히다

[마이데일리 = 고양 김진성 기자] "체육기자로서 한국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에 성화봉송주자로 참여하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2017년 6월이었다. 스포츠팀 선배 기자가 평창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당시에는 별 다른 감흥도 없이 응했다. 당연했다. 뜨거웠던 여름, 다가올 겨울에 맛볼 짜릿한 경험을 미리 상상하는 건 불가능했다.

코카콜라에서 후원하는 성화봉송주자로 선정됐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 담당자에게 얼떨떨한 마음으로 소감을 말했다. 수개월간 연락하며 평창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갈 준비를 차곡차곡 했다. 작년 11월 말에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성화봉송이 시작되면서, 2018년 1월 18일 오후, 기자가 사는 고양시 일대에서 평창으로 가는 불빛을 밝히기로 확정했다.

주목 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부모님과 회사 선, 후배 기자를 제외한 대부분 지인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역사적인 그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일 하느라,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덤덤했다. 회사 선, 후배 기자들이 '가문의 영광'이라며 비행기를 태웠지만, 그저 웃고 말았다.

'드디어 하는구나.' 처음으로 가슴이 울릴 때는 함께할 주자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2016년 리우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마라톤 은메달리스트 이봉주. 두 셀럽이 기자를 사이에 두고 평창의 역사를 쓴다니.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박 선수가 승마선수로 패럴림픽 출전을 꿈꾸는 조태현(홀트학교) 군의 꿈을 위해 함께 뛴 뒤 기자에게 불꽃을 전달하기로 했다. 이봉주 씨는 박 선수에게 불꽃을 연결했다. 어찌됐든 무명의 체육기자에겐 '가문의 영광'이다.

18일 정오. 한국스포츠 역사를 쓸 각계각층의 인사가 모였다. 성화봉송 사전교육을 받기 위해서다. 박 선수, 이봉주 씨 외에도 방송인 노홍철이 참가했고, 현장에 가는 버스에선 가수 산다라 박과 슈퍼주니어 멤버(남자 연예인이라 이름은 기억 나지 않는다) 2명이 합류했다. 총각 기자는 산다라 박의 미모에 감탄하며 기념 컷을 남겼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기자에게 희망을 전해줄 박 선수와 태현 군이었다. 박 선수는 "좋은 일이잖아요. 태현 군은 평창올림픽 성화봉송 발대식에 참석했을 때 처음 만났어요. 국내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데 힘을 보탤 수 있어서 영광이죠"라고 말했다. 말이 약간 불편한 태현 군의 수 많은 질문에 일일이 맞장구 치며 챙기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마음도 금메달처럼 곱고 빛났다.

천천히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기자보다 먼저 희망 배달에 나선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보였다. 슈퍼주니어 멤버들이 내리자 텔레비전에서 보던 익숙한 소녀들의 하이톤 응원이 귀에 꽂혔다. 이봉주 씨와 박 선수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답게 수 많은 관계자, 행인들의 박수를 받았다.

버스에 남아있는 주자들이 하나, 둘 줄어들자 가슴이 떨려왔다. 오후 3시 조금 넘은 시각. 마침내 정해진 장소에 내려 불꽃을 기다렸다. 부모님이 열일 제치고 달려오셨다. 부모님, 행인들과 기념촬영을 했고, 코카콜라 관계자들과도 하이파이브를 하며 결전의 순간을 맞이했다. 스포츠팀 선배 기자 한 명도 바쁜 와중에 현장에 들러 기자를 축하해줬다. 본지 사진기자 역시 고생을 많이 했다.

박 선수와 태현 군이 시야에 들어왔다. 현장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토치 키스를 했다. 무명의 체육기자가 올림픽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평창의 불꽃은 전세계에서 오로지 기자만 밝혔으니 말이다.

평창으로 가는 희망을 싣고 정해진 200m를 달렸다. 본래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걸음이 빨라졌고, 현장 관계자들은 '천천히 뛰라'며 진땀을 뺐다. 다음 주자에게 무사히 불꽃을 전달하고 버스에 올라타자 갑작스럽게 피로가 몰려왔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새 여자친구와 첫 데이트를 하는 느낌이었다.

평창으로 희망을 전하면서,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얘기도 했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물론이고, 평창올림픽 취재를 준비하는, 고생하는 언론 관계자들을 향한 감사한 마음도 표했다. 나 자신에게 감사하다며, 멋있었다며 자축도 했다.

성화봉송 증서를 받고 사복으로 갈아입으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솔직히 지난 7개월간 귀찮은 순간도 있었다. 전형적인 기계치라 뭘 가입하고 등록하는 것에 대한 노이로제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잘 했다 싶다. 체육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평창올림픽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성화를 손에서 놓고 나니 짜릿한 손맛이 진하게 떠오른다. 살면서 짜릿한 손맛을 몇 차례 느꼈는데, 확실히 좀 더 특별했다. 지난 수개월간 성화봉송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현장 스태프, 코카콜라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평생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할, 역사적인 2018년 1월 18일이다.

[평창올림픽 성화봉송 장면. 사진 = 고양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코카콜라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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