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신태용 인터뷰로 복기한 한일전

[마이데일리 = 일본 도쿄 안경남 기자] 솔직히 전술보단 정신력이 7년 만의 한일전 대승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투톱을 세우고 4-4-2 포메이션으로 세 줄을 유지한 것이 일본의 장점은 무력화시키고 당점을 공략한 전략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일전은 태극전사들의 정신력과 개개인 능력에서 일본보다 한 수 위였던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과거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가 사랑했던 4-4-2 포메이션은 가장 효과적으로 운동장을 활용할 수 있는 전술로 통한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감독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한 때 옛날 전술로 여겨졌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유럽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레스터 시티가 두 시즌 전 4-4-2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에 올랐고 스페인에서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이 전술을 가장 잘 쓰는 팀으로 유명하다.

4-4-2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선수들이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공격과 미드필더 그리고 수비가 명확하게 나뉘기 때문에 복잡한 움직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라인이 적기 때문에 공격과 수비의 간격을 최대한 좁힐 수 있다. 이는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자리를 이탈 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를 없애준다.

한일전에서 무회전 프리킥을 작렬시킨 정우영은 “상당히 심플한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세 줄을 맞출 수 있고 간격 유지도 수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가 쉽다”고 말했다.

물론 약점도 뚜렷하다. 간격 유지에 실패하면 그 사이를 4-2-3-1처럼 네 줄을 쓰는 전술에 너무도 쉽게 공략당한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에서 4-2-3-1을 사용한 독일이 4-4-2를 쓴 잉글랜드를 4-1로 대파한 경기가 대표적이다.(비록 프랭크 램파드의 득점이 골 라인을 통고했음에도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4-4-2 포메이션은 여전히 그만의 장점으로 살아 남아 있고 내년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적지 않은 팀들이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1월 콜롬비아, 세르비아를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인 신태용식 4-4-2는 동아시안컵 우승을 가른 한일전에서도 성공적으로 작동하며 확실한 플랜A로 자리잡았다.

(한국 4-4-2 포메이션 : 21조현우 - 14고요한 20 장현수 6윤영선 3김진수 - 12김민우 16정우영 13주세종 17이재성 - 11이근호 9김신욱 / 신태용 감독)

(일본 4-1-4-1 포메이션 : 12나카무라 - 22우에다 3쇼지 6미우라 5쿠루마야 – 17곤노 - 14이토 2이데구치 7쿠라타 13도이 - 11고바야시 /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

“가상으로 시나리오를 어느 선수가 어떻게 들어가고, 일본이 어떻게 나오면, 어떤 포메이션으로 할지 상대의 두 경기를 다 보고 준비했다. 그리고 그게 잘 먹혔다. 오늘은 일본이 교체 선수와 어떤 포메이션을 들고 나올지 준비했고 잘 맞았다” – 신태용 감독 –

축구에서 상대 분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한일전이 말해줬다. 앞서 중국, 북한전에서 신태용 감독은 경기 준비를 잘 하고도 미처 대응하지 못한 변수에 발 목을 잡혔다. 중국과의 경기에선 두 골로 앞서가다가 상대의 후반 스리백 전환에 빠른 대처를 하지 못했고, 북한전은 상대의 빠른 역습을 막기 위해 수비 지역에 지나치게 많은 숫자를 두면서 공격의 예리함을 잃었다.

두 경기는 신태용 감독에게 많은 교훈을 안겼다. 그가 두 경기가 끝난 뒤 “축구라는 것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A부터 D까지 준비해도 E, F가 나온다. 그래서 어렵다”고 털어놓은 이유다.

그래서 일본전은 누구보다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는 일본이 들고 나올 전술에 모두 대응할 준비를 마쳤다. 포백을 쓸지, 스리백을 쓸지 아니면 원톱일지, 투톱일지에 따라 맞불을 놓을 카드를 일일이 다 준비했다. 심지어 교체로 누가 나오냐에 따라 대응법까지 마련했다. 사실상 4-1이 된 상황에서도 이재성을 빼고 수비수 정승현을 투입해 스리백을 만든 건 한 치의 빈틈도 주지 않으려는 그의 치밀함이 숨어있다.

“김신욱의 경기 영상을 보고 이재성이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고 지시했다. 왼쪽 사이드백 김진수의 크로스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김신욱에게 타이트한 대인 마크를 주문했다. 그리고 공중전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할 땐 그에게 공이 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김신욱에게 통하지 않았다” – 할릴호지치 감독 –

김신욱에 대한 멘트는 적장인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김신욱의 선발을 예상하고 수비수들에게 디테일한 방어법을 지시했다. 최대한 김신욱을 가까이서 밀착 방어하고 그것이 여의지 않을 때는 크로스를 올라오지 못하도록 주문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알고도 못 막는다라는 말이 오늘은 김신욱을 보고 하는 말 같았다.

정확한 숫자를 세기 어려웠지만, 김신욱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상대 위험 지역에서 공을 소유하거나 떨궈냈다. 그의 압도적인 피지컬 앞에 일본 수비수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특히나 김신욱을 막기 어려웠던 이유는 지나치게 내려 간 수비라인 탓이 크다. 일반적으로 높이에 강점이 있는 선수를 상대할 때는 라인을 올려 위험 지역에 세컨볼이 들어오는 걸 저지해야 한다. 라인을 내리면 바운드된 공이 곧바로 어택킹서드(경기장을 1/3으로 나눴을 때 상대 수비지역)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실제로 한국은 이 지역에서 여러 차례 공을 따냈고, 이는 곧바로 한국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4-4-2 포메이션은 심플한 전술이다. 이해가 쉽다. 세 줄이 간격을 맞추기 쉽다. 일본은 패스가 좋기 때문에 압박보다는 세 줄로 그물망을 치다가 빼앗으면 바로 역습으로 나가는 데 중점을 뒀다” – 정우영 –

4-4-2의 중앙에 서는 미드필더 정우영의 얘기다. 신태용 감독이 중국전(4-2-3-1), 북한전(3-4-3)이 아닌 4-4-2를 가동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표팀은 그동안 한 목소리로 일본의 장점이 ‘패스’라고 말했다.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기 위해선 길목을 차단해야 하고, 그러려면 공수 간격이 매우 좁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4-4-2는 매우 효과적인 전술이다. 정우영의 말처럼 선수들의 이해가 쉽고, 세 줄을 통해 공격과 수비 사이의 간격을 조율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달 콜롬비아,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도 4-4-2를 통해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는 상대의 패스를 끊어 역습으로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일본과 결승전에서 붙었을 때 2-0으로 이기다가 3-2로 역전 당한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서고 있을 때 머릿속에 어떻게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도하에서의 상처는 감독 커리어에 상처가 됐지만 오늘은 보탬이 됐다” – 신태용 감독 –

후반 24분 교체로 들어온 염기훈의 프리킥 득점이 터지며 스코어는 4-1이 됐다. 3골 차면 웬만한 경기에서는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은 곧바로 두 번째 교체 카드로 미드필더 이재성을 불러들이고 수비수 정승현을 투입했다. 그리고 포메이션도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전환했다.

도하의 교훈이다. 1년 11개월 전 신태용 감독은 2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골을 기록하기 위해 공격적인 전략을 계속 유지했다. 하지만 이는 독이 됐다. 이기는 상황에서 너무 앞으로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일본에게 너무 쉽게 공간을 내주며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후 전문가들은 신태용 감독의 대처를 지적했다. 2-0에서 수비를 내리면 일본이 올라와 역습이 더 수월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당시의 뼈아픈 경험은 큰 교훈이 됐다. 신태용 감독은 이날 사실상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도 수비수를 투입하며 확실한 승리 시나리오를 가동했다. 이미 머릿속에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다. 예상대로 잃을게 없어진 일본은 공격 숫자를 늘리며 막판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수비를 두텁게 세운 한국은 위기를 넘겼고, 4-1 승리로 경기를 마쳤다.

[사진 = 마이데일리DB, TacticalPAD, AFPBBNEWS]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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