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신태용 인터뷰로 복기한 중국전

[마이데일리 = 일본 도쿄 안경남 기자] 과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를 이끌었던 해리 레드냅 감독은 스스로를 비전술가라고 부른다. 그는 축구에서 전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신 경기의 결과는 온전히 선수들의 플레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레드냅의 지도를 받았던 네덜란드 출신 플레이메이커 라파엘 판 데 파르트는 “레드냅은 전술 설명을 하지 않는다. 드레싱 룸에 전술판이 있지만 그는 그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레드냅의 주장이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축구에서 전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지고 있다. 유럽의 빅클럽들이 감독 한 명을 영입하는데 천문학적인 연봉을 제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선수단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없다면 감독을 데려와 전술을 뜯어 고치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하다.

그런 측면에서 아시아에서도 축구 변방으로 분류되는 중국이 ‘월드컵 우승 감독’인 마르셀로 리피를 거액에 데려온 건 주목할 만 한 사건이다. 이탈리아를 세계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리피의 지도력은 이미 검증된 무기다. 옛날 같으면 한국에 역전을 당한 중국은 쉽사리 회복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리피의 극약처방을 받은 중국은 후반에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했고 한국으로 넘어갔던 주도권을 가져오며 끝내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반면 선수 개인의 기량으로 선제 실점을 극복하고 역전에 성공했던 한국은 중국의 후반 전술 변화에 당황한 듯 갈 길을 잃고 헤맸다. 경기 후 선수들도 “중국의 스리백(back three: 3인수비) 전환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중 시시각각 변하는 상대 전술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선 감독의 빠른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태용 감독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득점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그것보단 중국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더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 4-2-3-1 포메이션 : 1김진현 - 2최철순 5권경원 20장현수 3김진수 - 16정우영 13주세종 - 8이명주 17이재성 19염기훈 - 9김신욱 / 신태용 감독)

(중국 4-3-3 포메이션 : 1옌쥔링 - 16정정 6가오준이 2류이밍 21덩한윈 – 13허차오 7자오쉬르 15우시 - 18영리위 20웨이스하오 22위다바오 / 마르셀로 리피 감독)

“사실 전반전 10분 정도는 내려 앉아서 우리 플레이를 하려고 준비했는데 이른 시간 실점을 하면서 준비한 전방 압박을 빠르게 시도했고, 상대를 고립시켜 공을 빨리 빼앗아온 것은 긍정적이었다”

신태용 감독의 말처럼 한국은 경기 초반 공을 오래 소유하지 않았다. 기록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전반 15분 동안 한국의 점유율은 48.5%로 중국(51.5%)보다 낮았다. 점유율을 좀 더 세분화할 순 없지만 10분 안으로 따지면 한국의 점유율은 더 내려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은 빠르고 경기력을 회복했다. 라인을 올리면서 점유율도 순식간에 60%가까이 상승했다.

점유율이 높다고 경기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은 공을 갖고 있지 않을 때보다 공을 소유할 때 더 위협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특히 이명주와 이재성은 짧고 빠른 패스로 중국의 수비라인을 깨트렸고, 김신욱이 높이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면서 경기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우리가 중국보다 훨씬 많은 볼 점유율을 가지고 좋은 경기를 했다. 골 결정력만 좋았다면 전반전에 한 두 골을 더 넣고 후반전도 우리 페이스로 갈 수 있었는데, 찬스를 살리지 못해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했다”

“염기훈, 이명주, 김신욱 등이 완전한 찬스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 전반전이 끝나고 그런 찬스를 후반전에 넣지 못하면 동점골 내지는 추가골까지 내줄 수 있다고 선수들에게 얘길 했지만 상대에게 역습을 맞았다”

리피 감독은 김신욱을 앞세운 한국의 고공 플레이에 중국이 흔들리자 빠르게 변화를 가져갔다. 후반 시작과 함께 측면 공격수 웨이스하오를 빼고 측면 수비수 리쉐펑을 투입한 뒤 포백(back four: 4인 수비)에서 스리백으로 시스템을 전환했다. 포백 라인이 그대로 우측으로 이동하고 17번 리쉐펑이 왼쪽 윙백으로 들어갔다. 기본적으로 수비할 때는 5-3-2를 유지했고 공격시에는 좌우 윙백이 높은 위치까지 전진하면서 3-5-2 혹은 3-3-4처럼 보이기도 했다. 리피는 스리백 변화에 대해 “후반전에 전략을 바꾼 게 주효했다. 수비를 좁게 하는데 중점을 뒀고 그것이 잘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스리백 전환은 한국 선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상대 윙백이 전진할 때 측면 미드필더가 막아야 할지, 아니면 풀백이 압박해야 할지 헷갈리는 모습이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재성은 “중국이 포백을 쓰다가 스리백으로 바꿨는데 이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실점 장면에서 고요한은 리쉐펑에게 향한 롱볼을 헤딩으로 끊어낸 뒤 다시 공이 중국 선수(인홍보)에게 가자 딜레마에 빠졌다. 중국이 원톱을 썼다면 센터백 중 한 명이 고요한을 돕기 위해 전진할 수 있었지만 투톱이 쇄도하면서 그럴 수 없게 됐다. 결국 인홍보와 리쉐펑 사이에서 고요한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키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공간을 확보한 리쉐펑의 크로스는 위다바오의 헤딩 동점골로 연결됐다.

“전체적으로 수비진의 몸이 무거웠다. 패스 실수로 상대에게 너무 쉽게 공을 빼앗긴 점은 아쉬웠다. 특히 압박을 들어갔을 때 상대가 올라와서 반대로 크로스 당할 때 우리의 수비 위치가 좋지 않았다”

신태용 감독은 수비진의 위치 선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두 골 모두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왔을 때 수비수들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놓쳤다고 분석했다. 틀린 얘긴 아니다. 수비수들이 공이 날아올 위치를 예측하고 공간을 확보했다면 사전에 크로스를 차단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두 번째 골은 전술적인 판단 미스이기도 하다. 중국이 투톱으로 바꾸고 그 중 한 명을 키가 큰 공격수로 교체한 뒤에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치 선정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픽 = 마이데일리DB, TacticalPAD]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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