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의 틈] 김주택·임선혜의 도전,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마이데일리 = 박윤진 기자] 목요일 심야(深夜). 오전 1시를 넘겨 MBC 'TV예술무대'가 전파를 탄다. 클래식 실황을 안방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감상에 젖는 건, 공연장 문턱이 높게 느껴졌던 대중에게는 새 장르를 체험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좋은 기회나, KBS 1TV '중계석'이 내건 '고급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취지도 방송 시간대만 놓고 보면 힘을 얻기 어렵다. 'TV예술무대'는 물론이고, '중계석'은 오전 2시 50분(목)·오전 3시 25분(금), SBS '문화가중계'는 오전 5시에 방송하는 탓이다.

클래식과 오페라에 대한 대중의 심리적 장벽은 높다. 들으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벽을 자발적으로 허물기 어렵다는 게 난제다. 소위 '고급문화'로 일컬어지면서도 TV에서조차 외딴 시간대에 고립돼 있다.

이같은 현실 속에 성악가 김주택, 임선혜의 도전은 커다란 의의가 있었다.

김주택, 임선혜는 새벽 시간대의 고립에서 벗어나, 파급력 큰 황금시간대 음악 예능에 직접 출연해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을 깬 것이다.

'세계적 오페라 스타'란 수식어로 예능 세계에 발을 내디딘 바리톤 김주택은 "0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JTBC '팬텀싱어2'에 나서 미라클라스 팀으로 최종 2위를 차지했다.

결과를 떠나, 실력에 인간미까지 겸비한 김주택의 모습에 안방극장 시청자들은 단숨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그를 향한 관심은 김주택이 주역으로 활약한 오페라 콘체르탄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이제 관객들이 내게로 올 때"라는 김주택의 말처럼, 실제로 관객들은 방송 후에도 그를 찾았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2천여 객석은 관객들로 채워졌고, 그들은 열광적이었다. 김주택이 엔리코 역으로 처음 등장하자 주변이 술렁일 정도였다. 공연장 밖에는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수십 명의 팬들이 몰리기까지 했다. '팬텀싱어2'는 끝났으나, 그 열기는 식지 않았던 것이다.

김주택의 노력은 고무적이다. 크로스오버가 아닌 성악가가 자신이 내오던 소리만으로 대중을 설득시켰다는 가치 때문이다. 기자에게도 광란의 아리아라는 초절정의 기교를 경험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오페라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아시아의 종달새' 소프라노 임선혜는 1년 중 유일한 한 달 휴가를 엠넷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을 위해 반납했다.

그리고 임선혜는 단 첫 회만에 실력으로 시청자들을 충격의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이승환, 최백호, 최정원 등 대중적으로 이름이 더 알려진 마스터들을 제치고, 전통 오페라 '울게 하소서'(헨델 오페라 '리날도' 中)로 단숨에 1위를 차지한 임선혜였다.

엠넷 신정수 국장은 인터뷰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는 임선혜의 당시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대중가요를 더 선호할 것이라는, 알게 모르게 가지게 되는 편견이 보기 좋게 깨진 셈이다.

임선혜는 "클래식은 관객을 맞이한다. 대중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며 음악 예능 출연이 "대중에게 먼저 다가서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김주택은 '팬텀싱어2'로 시청자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만들었고, 임선혜는 '더 마스터'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두 성악가의 위대한 용기에 대중과 이들 사이에 놓여있던 커다란 장벽이 비로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사진 = 아트앤아티스트, EA&C, JTBC 제공, 엠넷 방송 화면]

박윤진 기자 yjpar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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