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러빙 빈센트’, 28살 청춘에게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일본 화가 야노 시즈아키는 서경식 도쿄게이자이 대학 교수와 대담(‘고뇌의 원근법’)에서 고흐 그림의 특징을 들려준다.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세잔, 마네, 르누아르 등의 방이 있는데, 고흐 방에 들어간 관람객은 유독 그림에 바싹 달라 붙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고흐 그림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고흐는 ‘원근법’으로 멀어져가는 감각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관람객은 마치 빨려들어가듯 그림을 응시한다는 설명이다. 그림 자체가 그만큼 강력하다.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의 관객도 스크린에 빨려 들어간다.

‘러빙 빈센트’는 빈센트 반 고흐의 미스터리 한 죽음을 모티브로, 전 세계 화가들이 10년에 걸쳐 그의 마스터피스 130여 점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한 전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고흐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에’ ‘까마귀가 있는 밀밭’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붉은 포도밭’ 등이 스크린을 황홀하게 빚어낸다. 이 영화는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고흐가 죽기 전의 마지막 삶을 체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유화 애니메이션은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였다. 폴란드의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고흐와 동생 테오의 편지를 읽으며 자랐다. 바르샤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영화학교에서 연출을 배운 그는 28살 때 ‘러빙 빈센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어떤 제작자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은 제작비를 구하느라 스무번 넘게 이사를 다녔다. 테스트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전 세계에서 화가가 몰려들었고, 투자자도 나타났다. 28살 청춘의 작은 꿈은 10년에 결친 노력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고흐가 처음 그림을 그린 나이도 28살이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던 고흐는 그 나이부터 숨을 거둔 37살에 이르기까지 2,0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틀에 한 작품씩 그린 셈이다. ‘러빙 빈센트’에서 고흐가 숙박했던 라부 여관의 아들린 라부는 “빈센트는 어떤 날씨에도 밤낮으로 그림을 그렸고 혼자 있는 걸 더 즐겼어요. 길고 긴 편지를 썼고, 항상 두꺼운 책을 읽었죠. 그는 행복해 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림은 고흐의 모든 것이었다.

고흐는 젊은 시절 미술상 점원으로 일했고, 벨기에 탄광에서는 전도사로 생활했다. 동생 테오의 권유로 28살에 붓을 잡았다. 그는 그림에 모든 열정을 불태웠다. 고흐는 화가 생활을 시작할 무렵 어느 편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 나는 무엇일까. 아무도 아니다. 별볼일 없고 유쾌하지 않은 사람.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절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없는 사람. 바닥 중의 바닥. 그럼 이 모든 얘기가 진실이라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이 보잘 것 없는 내가 마음에 품은 것들을”이라고 썼다.

인생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누구나 어떤 결심을 한다. 고흐가 그랬고,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이 그 길을 따라갔다. 둘 모두 10년 남짓의 기간에 ‘마음에 품은 것들’을 세상에 내보냈다. 10년의 시간은 고독과 외로움의 싸움이다. ‘러빙 빈센트’의 포스터는 푸른색 양복을 입은 고흐가 길을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담았다. 세상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사진 제공 = 퍼스트런]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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