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 우리는 김주혁을 잊을 수 있을까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애도의 시간이다. 김주혁을 향한 애도는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급작스럽고, 황망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까닭이다. 무엇보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배우였다. 생전 인터뷰에서 “훗날 사람들에게 ‘저 놈 참 잘 살았다’ ‘인생 잘 살았지’라는 얘기 듣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슬프게도, 그의 말은 너무 빨리 현실이 됐다.

김주혁은 대기만성형이었다. 지난달 ‘더 서울 어워즈’에서 영화 ‘공조’로 데뷔 20년 만에 처음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의 커리어를 감안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1998년 SBS 공채 8기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 '카이스트' '라이벌' '프라하의 연인' '떼루아' '무신' '구암 허준' '아르곤', 영화 '싱글즈'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YMCA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 ‘청연’ ‘사랑따윈 필요없어’ ‘아내가 결혼했다’ ‘방자전’ ‘적과의 동침’ ‘투혼’ ‘좋아해줘’ ‘비밀은 없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공조’ 등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쌓았다.

최근 출연작은 김주혁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비밀은 없다’에선 냉정하고 욕심많은 정치인 종찬 역을 맡아 손예진과 날카로운 연기 대결을 펼쳤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어떠한가. ‘시간의 홈’을 파놓고 관객을 미궁에 빠뜨리는 홍상수 감독 특유의 작품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공조’의 차기성 역으로 ‘섹시한 악역’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는 ‘흥부’ ‘독전’에 연달아 캐스팅되며 비상의 날갯짓을 폈다.

신이 시샘했을까. 왜 좋은 사람을 일찍 데려가는가. 오랜 도움닫기를 끝내고 이제 막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김주혁의 날개는 교통사고라는 ‘불운’으로 꺾였다. 그의 날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펄럭이고 있다.

어느 시인은,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고 했다. 그를 좋아하는 팬들은 이 계절을 오래 살 것이다.

[사진 = 사진 공동취재단, 영화 스틸컷]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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