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포커스] 여배우, '조덕제 성추행 사건' 의문점에 답하다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여배우 측이 조덕제 성추행 논란을 둘러싼 의문점에 대해 답했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는 조덕제 성추행 사건과 관련 여배우 측인 공동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남배우A(조덕제) 성폭력 사건-항소심 유죄 판결 환영'이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이다.

여성영화인모임, 장애여성공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5개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찍는페미, 평화의샘,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등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날 비록 사건의 당사자인 여배우는 불참했지만 직접 작성한 편지로 입장을 밝혔다. 공동대책위는 1심을 깨고 2심에서 재판부로부터 조덕제의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서 조덕제는 지난 2015년 4월, 영화 촬영 중 상대역인 여배우와 사전 합의 없이 그의 상의를 찢고 바지에 손을 넣는 등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약 30개월 동안 법정 공방을 펼친 끝에 조덕제는 징역 1년·집행유예 2년·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계획적, 의도적 행위가 아니었다거나 감독의 연기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여 추행의 고의가 부정된다고 할 수 없다. 감독이 직접적으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고 피해자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으라는 것은 없고 또한 이 사건 신의 촬영은 얼굴 위주라고 말하고 있어 피고인의 이와 같은 행위가 감독의 연기 지시에 충실히 따른 것이라거나 정당한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없다"라는 2심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조덕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의 지시와 시나리오, 콘티에 맞는 수준에서 연기했다. 해당 장면은 가학적이고 겁탈하는 신이었다. 당시 여배우가 등산복 상하의를 입고 있었다. 애초 '바지를 찢는다'는 약속에서 등산복 상의를 찢는 것으로 수정, 합의가 됐다. 여배우, 감독과 함께 현장에서 약속한 부분이다. '여배우의 바지 버클이 풀려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 건 격한 장면인 겁탈신이었기에 풀렸을 수도 있다. 알고 보니 버클도 아닌 '똑딱이'였다. 절대 바지에 손을 넣지 않았다. 1~2m 거리에서 감독과 카메라가 찍고 있었고 좀 더 떨어진 곳에서 수많은 스태프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4분간의 촬영 시간 동안 성추행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라는 주장을 내세운 상황. 그는 2심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조덕제의 반문, 많은 이가 갖는 의문이기도 하다. 다수의 스태프와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 촬영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에 공동대책위는 당시 현장을 전했다. 이들은 "사건이 일어난 13번 신이 좁은 공간에서 진행됐는데 벽면에는 거울이 있었다. 스태프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 카메라에 잡혔다. 그래서 카메라 감독, 촬영 팀 두 명 정도만 남은 채 감독 이하 스태프들이 빠지도록 조치가 취해졌다. 감독이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시할 땐 따로 시간을 내서 하기에 스태프들은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대게 알지 못한다. 배우가 준비되면 이미 합의가 다 되었겠거니 보고 추행이 있을 수 없다는 판단까지 이르게 된다"라고 말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영화를 찍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추행을 하냐'고 묻는다. 강제추행은 일어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있다.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이상 실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 배우의 몸을 만지며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면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촬영현장을 함께 하고 있음에도 배우의 일을 모르고 있으며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렇듯 현장의 스태프들에게 배우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대상이었다"라고 밝혔다.

여배우가 주장한 바지에 손을 넣는 행위가 그 어떤 영상에서도 찍히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은 "저와 연대 단체의 영화인들은 해당 영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자 측에서 법원에 제출한 메이킹 영상 모음과 실제 촬영영상 등을 분석하고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메이킹 영상은 현장 전체가 아니라 메이킹 기사가 선택해서 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 감독과 스태프들이 메이킹 영상 밖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황보다는 현장 상황이 어땠는지 알기 위해 참고했다"라며 "주목할 점은 13번 신을 촬영할 때 메이킹 기사가 촬영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출이 예정되어 있을 때에는 메이킹을 찍지 않는다. 하지만 13번 신의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에도 메이킹 기사가 촬영 감독 뒤에서 찍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메이킹과 촬영 영상에 따르면 촬영 전 리허설을 제외하고 총 세 번의 본 촬영이 있었다. 백재호 운영위원은 "두 번의 NG 후, 세 번째 촬영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며 "앞선 두 번의 촬영과 3번째 촬영은 분명히 달랐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13번 신에 대해 "얼굴 위주의 촬영"이라고 강조했다. "본 영화는 15세 관람가의 멜로 로맨스물이다. 피해자(여배우)가 맡은 역할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이다. 13번 신에서 중요하게 표현되는 부분은 성적인 노출이 아니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는 인물의 모습"이라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촬영콘티엔 상반신, 인물의 얼굴 위주로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촬영 방식에 대해서는 "컷이 따로 나눠지지 않는, 촬영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배우들의 움직임에 맞춰서 찍는 핸드핼드 롱테이크"라며 "미리 예정되어 있던 대로 연기를 하지 않는다면 NG가 날 가능성이 크다. 여배우의 멍 분장 역시 어깨와 등 윗부분에만 했다. 여벌의 의상이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다. 노출이나 접촉이 예정되어 있다면 필수적으로 하는 소위 말하는 '공사'도 하지 않았다"라고 얘기했다.

특히 공동대책위는 "여배우의 바지가 풀어져 있던 것은 사실이다. 피해자는 벨트를 매고 있지도 않았는데, 피고인은 이를 두고 벨트로 인해 피해자의 등산복 바지를 내릴 수 없었다는 말을 하는, 납득할 수 없는 진술을 했다. 이에 재판부가 신빙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물론, 감독이 거칠게 연기 지시를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콘티를 보면 얼굴 위주의 장면이다. 감독이 피고인에게 연기 지시를 할 때에도 '에로가 아니지만 강한 느낌이 들면서 얼굴 위주로 하라'라고 지시를 했다. 그런 지시에 대해 바지 속으로 손을 넣은 건 이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볼 수 없다라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작품의 감독에 대한 대응 계획도 밝혔다. 공동대책위는 "본 사건에 집중했기에 감독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배제하는 것으로 논의했다. 향후 감독이나 여타 다른 환경 등 문제 제기를 한다라면 논의해서 결정할 사항이다. 아직까지는 결정된 부분이 없다"라고 전했다.

<아래는 여배우의 편지 전문>

안녕하십니까, 이 사건 피해자입니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기자회견에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기자회견이 사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기를, 나아가 영화계의 관행 등으로 포장된 각종 폭력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건이 단순히 가십으로 소비되지 않고 연기자들이 촬영과정에서 어떻게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연기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갈 수 있게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우선 명확하게 하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 항소심 재판부에 의해 인정된 피고인의 죄명은 '강제추행'과 '무고'입니다. 피고인은 제가 강제추행으로 신고한 후 저를 대상으로 명예훼손 및 무고로 형사고소를 했으나 수사기관에서는 오히려 피고인의 행위가 무고라고 판단, 기소했고 항소심 재판부 역시 동의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둘째, 피해자인 저를 둘러싼 자극적인 의혹들은 모두 허위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며, 이와 관련해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임을 밝힙니다.

셋째, 유죄 확정 시 신상정보등록대상이 되는 피고인이 신상공개 후 500건이 넘는 기사를 통해 유포하고 있는 일방적인 주장은, 24페이지에 달하는 항소심 판결문을 통해 모두 사법적 판단을 받은 것임을 알립니다.

저는 경력이 15년이 넘는 연기자입니다. 연기와 현실을 혼동할 만큼 미숙하지 않으며, 촬영현장에 대한 파악이나 돌발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전문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촬영과정에서 피고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게 되자 패닉상태에 빠져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왜 성폭력 피해자들이 침묵하고 싸움을 포기하는지, 왜 신고나 고소를 망설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피고인으로부터 폭행과 추행을 당했습니다. 연기 경력 20년 이상인 피고인은 상대 배우인 제 동의나 합의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속옷을 찢었으며, 상·하체에 대한 추행을 지속했습니다.

도대체 연기에 있어서 '합의'란 무엇입니까? 저는 상대 배우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연기가 예견될 경우, 사전에 상대배우와 충분히 논의하고 동의를 얻는 것이 '합의'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연기했으며, 그렇게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저와 '합의'하지 않은 행위를 했고, 그것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연기를 빙자한 추행'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것이 '영화계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피고인을 무고할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사건 당시 저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아 비교적 안정적인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고, 미래의 영화인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연인과의 사랑도 키워나갔고, 가족들과도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비교적 평탄하고 행복하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그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불안 속에서도 단지 '기분이 나쁘다'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을 신고하고, 30개월이 넘는 법정싸움을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영화계에서 선배이자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피고인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고작 '기분' 따위가 연기자로서의 제 경력, 강사로서의 제 명예, 지키고 싶은 제 사생활보다 소중하겠습니까? 그럴 가치가 있겠습니까?

외부평가에 민감한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성폭력 사건으로 소송이 진행 중임이 알려질 경우 피해자임에도 매장당할 위험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고했습니다. 만약 피고인이 스스로 먼저 저에게 밝혔던 것처럼, 자신의 가해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하차를 실행했다면 굳이 이런 지난한 사법절차를 밟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당시 지켜야 할 게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사건 직후 하차의사를 먼저 표명했던 피고인은, 돌연 입장을 바꿔 하차의사를 번복하고 제게 고통을 안겨 주는 추가적인 가해행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배님'인 피고인의 추가적 가해행위와 더불어, 제게 침묵을 강요하는 주변의 압박이 더해지자 저는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명백한 성폭력의 기록이 담긴 영상을 '영화'로 남겨 대중에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15년 이상의 연기 경력을 가진 배우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이런 인권유린을 더이상 참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당한 성폭력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고했고, 그래서 모두 다 잃었습니다.

경찰에 신고 후 피고인이 저를 대상으로 보복성 고소를 단행했지만 수사기관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강제추행치상'으로 판단했고, 보복성 고소에 대해서는 '무고'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게 2015년 말에야 1심이 시작되었습니다. 피고인과의 대면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저는 공판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고 전문가들 역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안심시키셨습니다. 그래서 2016년 4월, 저는 피해자로서 법정에서 증언한 이후 재판이 곧 종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뤄지던 1심은 그로부터 8개월이 넘어서야 마무리가 됩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진 사실이 인정된다'라고 판단하면서도, 그것을 '업무상 행위'로 본 것에서 나아가 '(피해자가) 억울한 마음에 다소 과장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피해에 대한 증언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위의 조언에 충실히 따랐던 저는 1심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판기록을 복사하여 처음부터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섭고 고통스러워 외부에 피해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꺼려했던 제가 공론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사건 당시의 메이킹 영상 및 사고 영상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제 증언 후 8개월 동안 피고인 측에서 저를 '허위 과장의 진술 습벽이 있는 여성'으로 몰아갔음을 확인했습니다. 피고인의 지인이 1심 공판기간 중 단기간 취업한 언론사에서 낸 허위 기사들이 제가 '어떤 여성'인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공판과정에 활용되었고 영화 촬영 현장의 특수성은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각종 현상을 동일하게 겪었던 피해자로서의 제 상황도 무시되었습니다. 영화계의 특수성 등 '다름'을 재판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성폭력 피해자로서 제가 다른 피해자들과 '같음'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강제추행 및 피고인의 보복성 고소로 인한 고통에, 허위기사로 인한 추가피해까지 겹쳐지면서 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울면서, 넘어지면서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항소심이 시작된 이후 공판과정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제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여자'인지, 피해자의 자격이 있는지를 여전히 묻는 피고인 측의 공격에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저는 연대자들의 조언에 힘입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집중해 대응했습니다. 영화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성폭력 피해자로서 동일하게 겪는 현상에 대해 알렸습니다.

항소심 첫 공판부터 재판부는 '피해와 관련된 사실관계 파악에 집중하겠다'라고 선언하였기에, 저는 고통스럽지만 가해행위가 고스란히 담긴 사고 영상을 보면서 하나하나 다시 분석했습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 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연대자분들께서 용기를 주셨고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저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3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연기에 대한 열망도, 교육자로서의 책임감도 다 부질없다고 느껴졌습니다. 피해자임에도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울고만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연대자 한 분이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연대자 "당신이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피해자 "없습니다",

연대자 "그래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은 오롯이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가해자의 공격논리에 휘말려 '어떤 여자'인지 입증하려 애쓰지 말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차분하게 하나씩 다시 입증해가요. 곁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히려 연대자분은 "이렇게 공론화를 시도하고 수년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아 고맙습니다. 이 사건은 당신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오히려 고맙다는 그 말에 저는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게 항소심도 10개월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3일의 금요일,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범죄'라는 재판부의 판단을 직접 들었습니다. 30개월 만에 드디어 같음을 인정받고 다름이 이해되었습니다. 피고인의 행위는 '연기에 몰입하다 발생하는 부수적인 피해나 과실'이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라고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였음이 연기 활동에 장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자기 분야에서 삭제되거나 쫓겨나는 피해자들에게 저는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제 방식이 될 것입니다. 저는 단단하거나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투사가 되기에는 자질도, 능력도 부족하며 마음도 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싸우고 연대하려 합니다.

억울하고 분하며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숨을 고르며 말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원하지는 않아도, 차분하게 제가 할 수 있는 말부터 하겠습니다.

네, 그 첫마디입니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사진 = 마이데일리DB]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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