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열폭에 빠진 당신에게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침대에 누워 잘 나가는 대학 동기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브래드 슬론(벤 스틸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창문은 닫혀 있고, 하얀 커튼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어느 순간 갑자기, 정신적으로 ‘고립’됐다.

브래드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잘 살고 있지만, TV에 출연하는 잘나가는 정치평론가 크레이그(마이클 쉰), 전세기를 몰고 다니는 펀드회사 CEO,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거물급 감독, 40세에 IT회사를 팔아 하와이에서 은퇴생활을 즐기는 친구의 삶을 떠올리며 ‘열폭’(열등감 폭발)에 빠진다. 비영리단체가 돈과는 거리가 먼 직종인데다, 그마저도 하나 밖에 없는 직원이 떠나면서 인생을 헛 산건 같은 회의감에 시달린다.

‘비교불안’은 아들 트로이(오스틴 에이브람스)로 향한다. 트로이가 하버드대학을 졸업해 큰 성공을 거둔 뒤에 자신을 무시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으로 이어진다. 중년에 찾아온 브래드의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열등감은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심리적 지뢰밭이다. 잘못 밟았다간 내면이 일시에 폭발한다. 브래드는 어느날 문득 찾아온 열폭으로 삶의 중심을 잃어버렸다. 그가 열폭에 빠진 이유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했기 때문이다. 비교의 덫에 빠지면 지옥문이 열린다. 나만 제자리에 있거나 퇴보하고, 타인은 저 멀리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은 열등감에 기름을 붙는 일이다.

브래드는 아들 트로이의 친구 아나냐(샤지 리자)를 만나면서 비교의 덫에서 서서히 빠져 나온다. 아나냐는 브래드에게 “애초에 왜 경쟁을 하느냐.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라고 위로한다. 잘 나가던 친구들도 모두 단점이 있다. 크레이그는 친구들 뒷담화를 즐기는데다 학생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객원교수이고, 펀드회사 CEO는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하와이에서 은퇴생활을 즐기는 심각한 알코울 중독자였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두 한두 가지씩 결점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타인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우리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가족 또는 절친한 친구 정도에 불과하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 열폭에 빠지지 않는 비결이다.

마치 오디세우스처럼 열등감 극복의 긴 여정을 떠났던 브래드는 “아빠를 사랑한다”는 트로이의 말에 행복감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아들은 브래드에게 ‘트로이의 목마’였다. 견고하게 쌓였던 열폭의 성을 일시에 무너뜨렸으니까.

극의 마지막에 브래드는 트로이와 함께 호텔에서 잠을 잔다. 그는 “아직은 살아있다”는 생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긴다. 이때, 호텔방의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며 하얀 커튼이 살랑살랑 흔들린다(극 초반부의 커튼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이제 브래드의 삶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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