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 국가란 무엇인가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송강호는 지난 21년간 한국영화 최고의 축복이자 보물이다. 그가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김기덕 감독의 ‘악어’가 출현하기도 했던 1996년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태동을 알린 해였다. 송강호는 ‘초록물고기’ ‘넘버3’ 등에서 빼어난 조연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반칙왕’에서 첫 단독주연을 맡으며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괴물’ ‘밀양’ ‘놈놈놈’ ‘박쥐’ ‘의형제’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사도’ ‘밀정’ ‘택시운전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의 얼굴’이었으며, 폭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소화하는 ‘연기의 천재’였다.

그가 주연을 맡은 ‘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가 천만영화에 등극한 것 역시 곱씹어볼 대목이다. ‘괴물’은 괴수영화 장르의 틀로 국가의 무능력을 꼬집었고, ‘변호인’ ‘택시운전사’는 실화를 바탕으로 국가의 폭력성을 비판했다.

봉준호 감독은 2006년 6월 ‘괴물’ 제작발표회에서 “평범한 수준에도 못미치는 문제 많은 이 가족들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괴물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약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도와준 적이 있었던가를 되돌아보는 데서 영화의 메시지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한 가족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국가를 겨냥했다. 괴물에 끌려가 하수구에 갇힌 현서(고아성)는 국가의 무능력으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현서를 찾아달라는 박강두(송강호) 가족의 외침에 국가는 반응하지 않았다. 박강두에게 괴물은 국가 그 자체이다. 현서가 지옥같은 지하에서 더 작은 아이를 보호하고, 박강두가 부랑소년 세주를 거둬들여 밥을 먹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약자를 돌보는 장면은 과연 ‘국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변호인’은 국가의 존립근거와 정체성을 재확인한 작품이다. 송우석(송강호)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좌익사범을 조작하고 만들어내는 국가를 상대로 맞서 싸운다. 그는 법정에서 차동영(곽도원) 경감이 “국가가 뭔지 몰라?”라고 묻자,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친다. ‘국가는 곧 국민’이라는 헌법 조문은 1980년대 군사정권에 의해 탄압당하고 짓밟혔다.

‘택시운전사’도 국가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총칼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는 무고하고 선량한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 수많은 목숨을 빼앗았다. 김만섭(송강호), 황태술(유해진), 구재식(류준열)과 수많은 광주시민들은 신군부의 폭력에 대항해 ‘인간다움’과 ‘인간의 도리’를 지켜내려했던 최전선의 국민이었다.

대한민국 법 조문에서 ‘권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조항은 헌법 제 1조 2항이 유일하다. 그만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국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라다. 그동안 현대사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역사였다. 폭력과 무능력으로 점철된 아픈 시대였다. 송강호의 트리플 천만영화 ‘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는 결국 ‘국가란 국민이다’라는 헌법의 기본가치를 되새기는 작품이다.

이제 시대는 변했다. 과거 정권의 폭력과 무능력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아픔이 또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의 성숙된 의식이 필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을 가슴 속에 새겨야할 시간이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한다.”

[사진 제공 = 쇼박스, NEW]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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