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아스널 스리백의 포지셔닝 문제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 정상으로 이끈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은 페널티박스 바로 바깥 지역을 레드 존(red zone)이라고 불렀다. 그는 상대에게 공격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선 이 지역을 항상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처럼 들릴 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실점은 바로 이 레드 존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히츠펠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르센 벵거 감독은 히츠펠트의 주장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듯 하다. 지난 시즌 하반기 벵거는 20년 만에 스리백(back three: 3인 수비) 시스템을 가동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비록 5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FA컵을 우승하며 아스널 팬들에게 새 시즌에 대한 희망을 줬다. 하지만 스리백이 아스널에 적합한 전술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는 선수 구성의 문제일수도 있고, 감독의 잘못된 철학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아스널의 3-4-2-1 포메이션이 바로 그 레드 존에서 상대에게 너무 많은 공간을 내주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포메이션

위르겐 클롭 감독은 4-3-3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최전방에 로베르토 피르미누를 중심으로 좌우 측면에 사디오 마네와 모하메드 살라를 배치했다 포백(back four: 4인 수비)에선 조 고메즈가 오른쪽 풀백을 맡고, 알베르토 모레노가 왼쪽에 섰다.

벵거 감독은 스리백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징계에서 돌아온 로랑 코시엘니와 함께 나초 몬레알, 롭 홀딩이 포진했다. 레스터시티와의 개막전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홀딩의 선발에는 다소 의구심이 남았지만 벵거는 시코드란 무스타피 대신 홀딩을 선택했다. 가운데 중앙 미드필더에는 아론 램지와 그라니트 샤카가 자리했다.

#게겐 프레싱

4-3-3 포메이션이 전방 압박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는 클롭은 게겐프레싱(Gegen Pressing: 전방압박)으로 아스널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괴롭혔다. 이는 발 기술과 패스에 능한 메수트 외질과 램지의 공격 빌드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클롭은 “아스널에게 공간을 줬다면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졌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스널이 원하는 공간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의 압박은 훌륭했고 아스널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많은 훈련에 의해 만들어진 성과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리버풀은 이날 총 31번의 태클을 시도해 22개를 성공했다. 아스널(12개)보다 10개나 많은 수치다. 특히나 31개 중 10개가 상대 진영에서 이뤄졌다. 또한 사이드에서도 10개 이상의 태클을 시도했는데, 이는 곧바로 리버풀의 카운터 어택으로 연결됐다. 피르미누의 선제골이 바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고메즈가 헥토르 베예린의 공을 가로챘고 이어진 크로스를 피르미누가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레드 존

영국의 축구전술칼럼니스트 조나단 윌슨(Jonathan Wilson)은 “3-4-2-1 포메이션은 2명의 홀딩 미드필더가 3명의 센터백을 보호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구조를 갖는다. 이는 최근 3-4-2-1 시스템이 성공한 이유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스널은 2명의 미드필더가 너무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 샤카는 패스성공률이 높지만 그로인해 지나치게 전진하는 성향을 보였다. 램지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선 외질보다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아스널 스리백 앞의 레드 존에 광활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스토크시티와의 경기에서도 아스널은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노출한 바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실패한 헤세 로드리게스는 아스널이 무방비로 내준 레드 존을 마음껏 휘저었다. 샤카는 이러한 공간을 커버하기에는 느리며 램지는 수비보다 공격에 더 치중하는 모습이다.

#교체

벵거 감독은 두 골을 내준 후에야 뒤늦게 램지를 빼고 프란시스 코클랭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베예린의 어이없는 실수로 세 번째 골을 실점하며 무너졌다. 벵거는 “후반 초반에 경기 주도권을 다시 가져왔다. 그러나 세 번째 실점으로 인해 우리의 계획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고 말했다.

후반 17분 산체스와 옥슬레이드-챔벌레인이 나간 뒤 아스널은 레드 존에서 더 많은 공간을 내주기 시작했다. 이는 코클랭의 가세로도 해결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피르미누가 엠레 찬에서 패스를 하는 순간 샤카와 코클랭은 수비를 포기한 듯한 자세로 공간을 열어줬다. 그리고 이는 살라의 크로스와 교체로 들어온 다니엘 스터리지의 헤딩골로 이어졌다.

#총평

벵거가 스리백을 쓰기까진 무려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만큼 벵거는 한 번 정한 자신의 철학을 쉽게 바꾸지 않는 인물이다. 포백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시즌 막바지 스리백이 안정적으로 돌아가자 새 시즌에도 이를 지속하기로 결정한 듯 하다. 하지만 현재 스쿼드가 스리백에 어울리는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아스널의 3-4-2-1에 대해 윌슨은 “작금의 축구계는 점점 만능형 선수를 원한다. 그로인해 중앙 미드필더는 패스 뿐 만 아니라 수비적인 역할까지 수행하길 기대 받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스널은 그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며 벵거 감독이 최신 유행인 스리백을 도입했음에도 세부적인 디테일에선 시대에 뒤쳐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 AFPBBNEWS, TacticalPAD, SPOTV 영상 캡처]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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