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오대수와 오이디푸스를 기억하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짐 브로드벤트)는 과거의 어느 기억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를 떠올린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도 그랬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 오대수의 이름을 ‘오이(오)디(대)푸스(수)’에서 따왔다. 오이디푸스-오대수-토니는 모두 같은 캐릭터다. 이 세 명은 자신이 쏜 화살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맞아야만했던 인물들이다.

테베에 원인 모를 역병이 돌자 오이디푸스 왕은 신전을 찾는다. 그는 라이오스 왕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야만 역병이 그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는 수사관으로 변신해 범인 색출에 나서는데, 사건을 파헤치던 중 자신이 범인임을 알게 된다.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 동안 사설 감옥에 갇힌다. 자신을 가둔 이우진(유지태)을 찾아간 그는 학창시절 이우진 누나에 대한 소문을 낸 것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토니는 어떠했을까. 어느 날 토니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학창시절 첫사랑 베로니카(프레야 메이버)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 담긴 편지에는 친구 에이드리안(조 알윈)의 일기장이 언급됐다. 토니는 일기장을 받기 위해 40년 만에 베로니카(샬롯 램플링)를 만나는데, 정작 베로니카는 일기장 대신에 과거에 토니가 썼던 편지를 건네준다.

토니는 절친 에이드리안이 이제 막 자신과 헤어진 베로니카와 사귀자 저주의 편지를 보냈다. 문제는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잊었다는 것.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과거의 예감은 40년의 세월이 흘러 충격적인 현재로 돌아온다. 비극의 씨앗은 자신이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로 들어오는 길에 왕(아버지)을 죽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올드보이’의 오대수도 이우진 누나의 소문을 발설한 사실을 잊고 살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는 40년 전에 에이드리안과 베로니카에게 쓴 저주의 편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세 명은 수사관의 위치에서 범인 또는 사건의 원인을 찾아야하는 역설에 빠진다. 사건의 가해자가 자신임을 스스로 밝히는 자의 비극. 그것도 모든 사건이 끝나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아야하는 회한(悔恨)의 감정 앞에서 속절없이 무릎이 꺾인다.

영화의 원작자 줄리언 반스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할아버지는 인생에서 가장 나쁜 감정은 회한이라고 말했다. 내 어머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어떤 경우들이 그 감정에 부합하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의 할아버지가 말했던 회한의 감정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한국어 제목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했을까. 원작의 제목은 ‘Sense Of An Ending’이다. ‘결말의 느낌’ 또는 ‘결말의 예감’으로 번역된다. 풀어서 해석하자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느낌이나 예감이다. 일부 독자들은 한국어판 제목이 원작의 내용과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토니는 지독하게 둔감했고, 에이드리안과 베로니카에 대한 그의 예감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모두 틀렸으니까.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과거의 예감 하나는 맞았다. 기억조차 못했던 철없던 시절의 ‘저주’는 실현됐다. 결국, (끝에 이르러서 찾아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진 제공 = CGV아트하우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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