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밤해변’ ‘그 후’, 무소의 뿔처럼 혼자가는 김민희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이하 ‘밤해변’)와 ‘그 후’는 결국 김민희의 뒷모습에 대한 영화다. 각각 해변과 길거리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영화의 라스트신이다. 꿈과 현실, 또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홍상수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여전하지만,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세상의 편견과 오해, 뻔뻔함과 비열함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김민희)는 유부남 영화감독 상원(문성근)을 사랑했다. 세상은 유부남과 바람이 난 영희를 비난한다. 영희는 강릉의 술자리에서 남자들에게 “사랑을 못하니까 다들 삶에 집착하는 거잖아요. 그거라도 얻으려고. 다 사랑할 자격 없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세상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갈구하는 중이다. 제목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인데, 이 영화에서 영희가 ‘밤의 해변’에 있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그는 낮의 해변에 있다). 그렇다면 ‘밤의 해변’은 영희가 없는 시공간이다. 이곳은 “사랑을 못하니까 다들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영희는 ‘혼자’ 걸어간다.

‘그 후’에서 아름(김민희)은 문학평론가 겸 출판인 봉완(권해효)이 한달 전 쯤에 헤어진 창숙(김새벽) 자리에서 일한다. 봉완이 사랑에 빠졌다고 의심한 부인(조윤희)은 아름을 창숙으로 오해하고 세차게 뺨을 때린다. 졸지에 유부남과 바람난 여자로 오해 받은 아름은 저녁 술자리에서 출판사를 그만 두겠다고 말하지만, 봉완은 일할 사람이 없다며 붙잡는다. 바로 그 순간에 영국으로 떠났던 창숙이 돌아오고, 아름은 해고를 당한다.

아름은 그날 하루 동안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난데없이 뺨을 맞고, 출판사 사장의 전 애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아름의 ‘존재’를 이용해 불륜을 이어간다. 봉완과 창숙 역시 ‘밤의 해변’과 같은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타인의 배려하지 않는 비열함을 마다하지 않는다.

불륜남녀의 파렴치한 행태에 넌더리를 낸 아름은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전등을 켜고 책을 읽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다. 때마침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이 눈은 책과 글을 사랑하게 될 아름을 축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믿음’을 강조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밤해변’의 영희는 독일의 어느 다리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린다. ‘그 후’의 아름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로 등장한다. 여기서 믿음은 종교적 의미 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읽힌다.

아름은 그날 이후 어떻게 됐을까. 아름은 여전히 속물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봉완의 실체를 목격하고 길을 떠난다. 그는 책과 글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갈 것이다. 혼자라 쓸쓸하지만, 진심(‘밤의 해변에서 혼자’)과 진실(‘그 후’)을 몰라주는 세상과 작별하는 자의 결기가 느껴진다.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게 아닐까. 당당하게.

[사진 제공 = 전원사]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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