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됐다. 카타르 원정 2-3 패배가 치명타였다. 혹시나 반전을 기대하며 새벽녘에 졸린 눈을 비비고 TV를 시청했던 축구 팬들의 입에선 탄식이 흘러나왔고,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를 열고 슈틸리케를 쫓아냈다.

사람은 누구나 (사실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트루시니스(Truthiness)’라는 신조어로도 표현되는 인간의 심리 현상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5개월 전인 2015년 1월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끈 슈틸리케 감독은 ‘갓틸리케(슈틸리케와 영어로 신을 듯 하는 God의 합성어)’로 불렸다. 일부 축구 팬들 사이에선 슈틸리케가 실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며 ‘다산 정약용’이 아닌 ‘다산 슈틸리케’라 부르기도 했다. 찬사는 그렇게 또 다른 찬사를 낳았고, 슈틸리케의 모든 것이 포장되기 시작했다.

슈틸리케가 갓틸리게로 불리던 당시 필자는 대회가 열린 호주에서 슈틸리케 감독을 한 달간 취재했다.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대표팀을 보면서 기쁨보단 머릿속이 복잡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의 경기력은 답답했다. 선수단의 감기와 부상 등 경기 외적인 변수가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팀 전체적으로 확실한 콘셉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일각에선 상대팀의 경기력마저 저하시키는 슈틸리케호를 향해 ‘늪 축구’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승리를 따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개최국 호주를 1-0으로 꺾었고, 슈틸리케가 발탁한 공격수 이정협은 신데렐라로 주목을 받았다.

어쩌면, 이때부터 슈틸리케를 바라보는 시각은 객관성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늪 축구마저 슈틸리케의 장점으로 부각되면서 슈틸리케의 손 짓 하나하나에 한국 축구 팬들은 열광했다. 슈틸리케를 조금이라도 깎아 내리는 기자는 곧바로 ‘기레기’가 됐다. 모두가 좋아하는데, 혼자만 싫어하면 왕따가 됐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슈틸리케를 향한 물음표는 계속됐다. 다른 요인은 차치하고, 오직 전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만의 확실한 철학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스로는 점유율 축구를 강조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제 와서 모든 게 ‘허상’이었다고 지적하지만 당시에는 입 밖으로 꺼내기 조차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은, 필자의 머릿속을 매우 복잡하게 만든 경기였다. 이날도 한국은 우즈벡에게 고전했다. 상대의 결정력이 좋았다면 결과는 반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유의 늪 축구로 위기를 넘긴 한국은 연장 접전 끝에 ‘해결사’ 손흥민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뒀다.

무엇보다 주목 받았던 건 전술적인 변화였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한국은 측면에 있던 손흥민이 이정협 아래 처진 공격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 다음에는 기성용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진했다. 변화는 계속됐다. 마지막에는 손흥민이 원톱에 서고 기성용이 측면 날개로 이동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조차 “기성용이 왜 저 자리에 있지?”라며 놀라워했다.

팬들은 이를 두고 슈틸리케의 기막힌 용병술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필자도 슈틸리케 감독을 다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공항에서 만난 기성용과 대화를 나눈 뒤 그 생각을 다시 접었다.

포지션을 계속 바꾼 것이 감독의 지시였냐는 질문에 기성용은 “스스로의 판단”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남태희가 가운데 있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우즈벡 오른쪽 수비의 피지컬을 공략하기 위해 사이드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연장전 손흥민의 원톱 배치도 차두리의 조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이러한 사실은 갓틸리케를 향한 환호에 묻혔다.

이처럼 찝찝한 경기력에도 승리가 계속되자, 슈틸리케의 행동 하나 하나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훈련 전 콘 위치를 일일이 잡는 모습에는 ‘디테일’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또 이정협의 발탁은 2002년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을 발굴한 거스 히딩크와 비교됐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게 ‘알아두면 쓸데없는’ 것들이 돼 버렸다.

허상은, 믿는 대로 보이기 마련이다. 슈틸리케를 갓틸리케로 만든 건 결과에만 환호한 채 과정은 뒤로 미룬 모두의 무책임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로 인해 한국 축구는 슈틸리케와 함께한 996일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다시 월드컵을 코 앞에 두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고 있다. 부디 3년 전 브라질에서 범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길 희망(HOPE)한다.

[그래픽 = 대한축구협회, TacticalPAD]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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