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신태용 인터뷰로 복기한 英전

[마이데일리 = 수원 안경남 기자] 잉글랜드를 상대로 “한 번도 쓰지 않은 전술”을 가동하겠다고 밝힌 신태용 감독은 ‘투톱(2명의 공격수)’를 전방에 세우고 ‘스리백(3명의 수비수)’으로 후방을 구축한 ‘3-5-2 포메이션’을 꺼냈다. 필자가 프리뷰에서 예상한 4-4-2 다이아몬드는 아니었다. 194cm 수비수 이정문이 깜짝 선발 출전했지만 변칙적인 홀딩 미드필더가 아닌 스리백 중 하나인 스토퍼를 맡았다. 이는 클래식한 스리백을 의미했다. 현대 축구에서 스리백을 쓰는 팀들(대표적으로 첼시)은 세 명의 수비수 중 한 명 혹은 두 명을 전문 센터백이 아닌 ‘풀백 출신’ 또는 ‘홀딩 미드필더’를 기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신태용 감독은 정통적인 센터백 3명으로 스리백을 구성했다. 뒷공간 커버 혹은 빌드업 과정에서의 전진보다 ‘높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높이’ 대신 ‘속도’를 택한 잉글랜드의 단 한계 더 앞을 내다본 변화에 당하고 말았다.

■ 스타팅 포메이션: 3-5-2 vs 4-3-3

(한국 3-5-2 포메이션 : 1송범근 – 4정태욱 5이상민 20이정문 - 13이유현 18임민혁 6이승모 8한찬희 3우찬양 - 11하승운 9조영욱 / 감독 신태용)

(잉글랜드 4-3-3(혹은 4-2-3-1) 포메이션 : 1우드먼 - 2케니 5토모리 15프라이 14워커-피터스 - 7오노마 20에자리아 8메이틀런드-나일스 – 11루크먼 18도월 16칼버트-르윈 / 감독 폴 심슨)

“잉글랜드의 신장이 컸기 때문에 이정문(194cm)의 선발을 결정했다. 솔직히 (이정문 투입을 두고) 고민을 했다. 그러나 소속팀에서 스리백을 잘 했기 때문에 믿고 선발 기회를 줬다. 그러나 부딪혀보니 잉글랜드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은 달랐다”

이정문의 선발 결정은 잉글랜드의 높이를 고려할 변화였다. 실제로 잉글랜드는 앞선 두 경기에서 공격 2선에 도미닉 솔랑케(189cm), 키어런 도월(184cm), 도미닉 칼버트-르윈(189cm) 등 키가 큰 선수들을 배치했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 폴 심슨 감독은 과감한 변화를 결정했다. 솔랑케를 벤치로 내리고 측면에 있던 칼버르-르윈을 최전방에 세운 제로톱을 가동했다. 그리고 동시에 발이 빠른 아데몰라 루크먼을 측면에 세워 상대적으로 발이 느린 한국의 스리백을 공략했다.

이는 심슨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이 체력 안배를 위해 우리와의 경기에서 변화를 줄거라 예상했다. 과거 4개국 대회에서 한국이 에콰도르를 상대로 스리백을 쓰는 걸 봤다. 그래서 이번에도 스리백을 쓸거라 예상했는데 그것이 적중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한국을 괴롭힐 수 있을지 고민했고, 선발에 변화를 줬다. 한국을 괴롭힌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은 지금껏 쓰지 않은 전술을 쓰겠다고 했지만, 스리백 기반의 수비는 이미 에콰도르,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가동한 전략이었다. 잉글랜드는 이 중 에콰도르전을 분석했고, 한국의 스리백을 어떻게 하면 뚫을 수 있는 고민한 것이다. 한국이 높이를 대비할 때, 이것을 역으로 이용해 속도를 강화한 잉글랜드의 전략적인 승리였던 셈이다. 반대로 신태용에겐 뼈아픈 일격이 됐다.

“스리백을 들고 나와서 상대 측면에 공간을 주면서 실점했다. 김승우가 포어 리베로일 때와 달리 미흡했다. 그래서 김승우와 이상민을 두고 고민한 것이다. 이상민이 수비는 강했지만 공격적(빌드업)으로는 아쉬웠다”

스리백은 좌우 윙백이 어떤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5백이 되기도 하고, 완전히 분리된 3백이 되기도 한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잉글랜드가 공을 소유할 때 윙백이 낮은 곳까지 내려와 5백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잉글랜드 풀백이 오버래핑에 나설 경우 윙백이 사이드로 벌어지면서 3백과 사이에 넓은 공간이 발생했다. 실점 장면이 대표적이다. 우찬양(윙백)이 압박을 위해 측면으로 크게 이동하자 이정문(스토퍼)도 간격을 좁히기 위해 따라갔다. 하지만 둘이 동시에 뚫리면서 스리백의 측면이 완전히 무너졌다.

“축구는 공격과 수비를 왔다 갔다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포어 리베로를 쓰면서 역습을 통해 상대를 어떻게 하면 어렵게 만들지 고민하고 개선해야 한다. 그러면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스리백을 꺼낸 신태용 감독은 잉글랜드를 상대로 수비에 무게를 두며 역습으로 골을 노렸다. 이를 위해 미드필더 숫자를 2명(이진현, 이승모)에서 3명(한찬희, 임민혁, 이승모)으로 늘리고 전방에도 원톱 대신 투톱을 세웠다. 한찬희 혹은 임민혁이 전진 패스를 뿌려주고 조영욱, 하승운이 치고 나가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역습의 세밀함이 부족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로테이션 멤버를 가동하며 기존의 조직력을 유지하지 못했고 압박에 강한 이상민이 스리백의 측면에서 중앙으로 오면서 빌드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상민도 “포지션의 차이다. 가운데로 오면서 압박이 아닌 커버에 신경 썼다. 또 빌드업도 해야 했다. 이전과 다른 역할이었다. 솔직히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조영욱과 투톱을 이룬 하승운의 경우 경기 감각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활동량은 많았지만 역습 상황에서 공을 소유하고 공간을 파고드는 날카로움이 아쉬웠다. 물론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전반 33분경 조영욱이 사이드를 뚫고 올린 크로스를 하승운이 발리슛으로 연결했지만 골키퍼 정면에 향하며 땅을 쳤다. 신태용 감독의 말처럼 상대를 더 괴롭히려면 확실한 패턴이 요구된다.

“이승우와 백승호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상대가 압박을 받는다. 오늘 같은 경우 지고 있었기 때문에 후반에 더 밀어붙이는 모습이 나왔다. (단지 둘이 들어갔기 때문은 아니다) 새로운 선수들도 잘해줬다”

선제골을 내준 뒤 신태용 감독은 곧바로 한찬희, 하승운을 불러들이고 이진현, 이승우를 투입했다. 그리고 마지막 교체 카드로 임민혁을 빼고 백승호를 내보냈다. 포메이션은 3-5-2에서 3-4-3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골은 나오지 않았다. 흐트러진 조직을 다시 잡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승우도 “후반에 들어가면 템포를 잡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둘이 들어오면서 공격적으로 좀 더 위협적인 장면을 만든 것도 사실이다. 신태용 감독은 단지 후반 막판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말했지만, 잉글랜드 심슨 감독은 이승우와 백승호가 투입되면서 한국이 공격적으로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인정했다.

[사진 = 마이데일리DB, TacticalPAD]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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