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리의 솔.까.말] '비밀예능연수원', 기승전 짝짓기 밖에 답이 없나?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예능 초보자들이 예능 연수를 받는 콘셉트를 표방한 ‘비밀 예능 연수원’이 난데없는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

5일 오후 MBC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비밀 예능 연수원’이 방송됐다.

이날 방송된 ‘비밀 예능 연수원’은 비록 큰 웃음을 안기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아이돌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고민들을 엿볼 수 있었다.

한동근과 블락비 피오는 다른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과 함께 해도 “수고하셨습니다” 외에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친분을 쌓아 나갔다. 에이핑크 윤보미와 EXID 하니 역시 연예인 친구가 많지 않았다. 방송과는 달리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린다는 두 사람. 윤보미는 “뭔가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연예인 친구가 많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고, 하니 역시 공감하며 “내가 연예인인데도 연예인이 불편한 그런 느낌이다. 아직 내가 연예인이라는 실감이 잘 안 든다”고 고백했다. 악동뮤지션 이찬혁과 아스트로 차은우도 연락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서로 다른 팀인 탓에) 적이지만 동지처럼” 지내기로 했다.

여자친구 예린의 경우 경쟁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다. 차은우와 마주앉아 서로의 얼굴을 그리던 중 예린은 “나 처음에 여기 나온다고 해서 진짜 걱정했다. 나는 여자 10명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래서 되게 경쟁하는 줄 알았다. 내가 가서 또 못하면 어떡하지 싶었다”고 조심스레 고백했다. 이 말을 들은 차은우는 “그렇게 하면 밤에 잠이 안 오지 않냐”며 “새로운 거 하면, 겁이 많아서. 생각이 많거든”이라고 자신 역시 다르지 않음을 전했다.

이랬던 ‘비밀 예능 연수원’은 후반부 ‘소통의 장’ 시간이 된 후 커플 엮기가 난무하는 프로그램으로 변질됐다. 방송 초반 노홍철이 밝혔던 연수원의 존재의 이유인 ‘자아성찰’, ‘친목도모’, ‘리프레시’ 세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앞서 출연진들이 어렵게 꺼내 놓은 솔직한 이야기, 진솔한 모습들까지 기억에서 지워버릴 만큼 자극적 모습들로 가득했다.

‘소통의 장’은 서른장의 질문카드 중 한 장을 뽑아 그 답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첫 타깃은 하니였다. 하니는 ‘첫 키스했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라는 요청에 당혹스러워했다. 결국 하니는 중학교 3학년 때 1살 연상의 남자친구와의 추억을 공개했다. 피오와 송민호 역시 희생양이 됐다. 피오는 고1때, 송민호는 중학교 1학년 때 첫키스한 일화를 설명했다.

피오는 2연속 난감한 질문을 받았다. ‘이 안에 있는 사람 중에 무조건 한 명을 사귀어야 한다면 누구랑 사귈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대답을 안 할 수 없게 흘러갔다. 이 중에서 ’무조건’ 사귀어야 한다는 전제가 대답을 회피할 수 없는 강압적인 족쇄가 됐다.

결국 피오는 윤보미를 지목했다. 윤보미 역시 같은 질문을 받고 피오라 답했다. 두 사람의 말에 현장은 순식간에 연인 탄생 분위기로 흘러갔다. “축하드린다”는 인사와 박수가 쇄도했다. 이후 이찬혁과 여자친구 예린 역시 핑크빛 분위기를 형성했다. 프로그램 측은 ‘친구’라는 단어로 포장했지만 방송에서 그려진 분위기는 ‘연인’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모습은 제작진이 자신의 사적인 개인사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거나 남녀 사이에서 핑크빛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케 했다. 뜬금없는 러브라인은 앞서 이들이 털어놨던 진심마저 빛이 바라게 만들었다. 방송 시기도 문제였다. 어린이날 오후 시간대 방송된 파일럿 프로그램의 질문들이라기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비밀 예능 연수원’은 노선을 잘 못 택한 듯 하다. 아이돌 짝짓기 프로를 만들고 싶었으면 처음부터 그런 프로로 포맷을 짰어야 했고, 프로그램 기획 의도대로 예능 초보자들이 예능 연수를 받는 콘셉트를 선보이려면 이들이 예능에 최적화되는 모습들을 선보이는 게 맞다. 이날 방송된 ‘비밀 예능 연수원’은 막판 제작진의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자극적이기만 한 이도 저도 아닌 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다.

[사진 = MBC 방송 캡처]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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