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의 틈] CJ E&M이 방송을 만들기 전에 배워야할 것

[마이데일리 = 박윤진 기자]미니시리즈 드라마에 출연했던 남자 주연 배우는 종영 인터뷰에서 담배 한대 태울 여유 조차 누리지 못한 스태프를 떠올리며, 차마 "힘들었다"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스태프는 예술가"라며 그들의 열정이 현장의 혹사에 빛 바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3년이 흘렀다. 상황은 조금도 더 나아진 게 없다. '즐거움엔 끝이 없다'는 슬로건을 내건 CJ E&M에선 젊고 유능한 신입 조연출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지난해 10월 발생했다. 과도한 업무와 인격 모독, 권위적인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게 유가족의 주장이다.

'드라마 왕국'으로 급성장한 미디어 대기업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는 CJ E&M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어느 조연출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9일 성명을 통해 고 이한빛 PD의 죽음이 "방송콘텐츠 제작에 종사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현실을 웅변한다"고 규탄했다.

작가와 프로듀서가 스타급 인기를 누리는 요즘, 방송계통 직업은 젊은 취업자들에게 '로망'이다. 막상 방송국에 들어가면 소속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노동력은 착취 당하고, 언어 폭력은 비일비재하며, 경력 전망도 불투명하다. 인권의 사각지대다.

필자의 여동생은 지상파 프리랜서 작가다. 막내 딱지를 떼기 위해선 더 열악한 환경의 외주제작사에서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방송국에 남아 있는 한 평생 '막내 작가'인 게 현실이다. 고강도 업무에 몸의 감각은 무뎌졌고, 방송이 엎어지면 돈도 못받는다.

신입 조연출 사망 사건을 마주한 뒤, 불안하고 미래가 막막해 다른 일을 알아 보고 싶다던 동생에게 끈기가 없다고 나무랐던 것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 목숨을 끊어야만 반짝 관심을 갖는다. 금세 잊혀진다. 과거에도 방송국 청년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방송국은 예나 지금이나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재발방지를 위해 방송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꽃같은 청춘의 잎은 또 떨어질 것이다.

CJ E&M은 청춘의 삶을 위로하는 ‘혼술남녀’ 시즌2를 준비 중이다. 자사 직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누구를 위로하겠단 말인가.

당신들이 “문화를 만드는 기업”이라고 자임한다면, 먼저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

[사진 = tvN 제공]

박윤진 기자 yjpar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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