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건강]‘커피관장’ 맹신이 자초하는 명백한 위험들

[박영순의 커피와 건강]

며칠 전 국내의 한 자연치유원에서 다섯 살 소아암 환자가 숨지고 50대 유방암 환자가 심한 뇌손상을 당한 사건은 많은 커피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이 그곳에서 ‘커피관장(Coffee Enema)’ 시술을 자주 받은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커피관장은 항문을 통해 직장과 결장으로 커피액을 주입하는 시술로, 1920년대 독일계 미국의사인 막스 거슨(Marx Gerson) 박사가 창안했다. 국내에는 1990년대 후반 대체의학의 하나로 소개돼 공중파 TV를 타면서, 한 때 암치유의 희망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거슨 박사는 노벨상 수상자인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와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슈바이처 박사는 75세때 거슨 박사에게 말기 당뇨병을 치료받고 93세까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거슨 박사를 천재의학자’라고 격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관장을 하는 방법 자체는 역사가 깊다. 관장은 '보내다' '안으로 주사 하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비롯됐다. 오래된 의학적 방법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아프리카 부족들도 먼 옛날부터 변비와 고열 등을 해결하는데 사용해왔다.

관장은 기원전 15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파라오가 관장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두었다는 내용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도 동물의 뼈와 방관을 이용해 관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저녁식사 후 하는 실행하는 하나의 일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태양왕 루이 14세는 평생 2000번 이상 관장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의학계는 커피관장법의 효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병원은 “커피 관장의 효과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의학적으로 추천되지 않는다. 집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무리하게 관장을 하면 출혈 및 세균 감염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시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의학계 일부, 특히 한의학계에서 커피관장을 해독요법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적잖게 볼 수 있다.

커피관장이 해독을 돕는 메커니즘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커피에 들어 있는 팔미틱산(Palmitic Acid)이 간장으로 전해져 ‘글루타치온-S-전이효소(Glutathione-S-Transferase; GST)’의 활동을 증진시킨다. 이 효소는 몸에 축적된 과산화물을 제거하고, 활성산소를 배출시켜 노화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한마디로, 커피에 들어있는 팔미틱산 등 유효성분들이 간으로 전해져 해독기능을 원활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문제는 커피를 음용하면 팔미틱산이 간에 도달하기 전에 위장에서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돼 상당량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커피관장의 경쟁력은 대장에 분포하는 간문맥(Portal Vein)을 통해 팔미틱산을 흡수해 간으로 전달함으로써 위장을 거치지 않게 한다는데 있다.

커피관장 시술이 비교적 간단하다 보니 되레 문제가 생긴다. 개인이 가정에서 무분별하게 커피관장을 하면서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뜨거운 커피를 사용해 화상을 입는다거나 심한 경우 대장에 구멍이 난 경우도 있다. 무리하게 사용해 물리적인 상처와 염증을 겪었다는 보고도 적지 않다. 숙변제거를 통해 다이어트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커피관장과 관련한 도구들이 경쟁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커피관장법을 맹신해 이 방법에만 매달리는 것은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자연치유원 사건의 경우, 단식과 무리한 관장 시술로 인해 몸 상태가 엉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적인 진료나 상담과정 없이 커피관장을 시도했다가 이온 불균형과 감염, 출혈 등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자초할 위험이 크다. 커피관장을 했다가 세균감염으로 인해 패혈증까지 겪은 사례도 있다.

암환자 가족이나 체중 조절을 고민하는 당사자들의 간절한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지만,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얻지 못하는 등 의학적 효능이 분명치 않은 커피관장법을 개인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결코 권할 일이 아니다.

[그림 설명: 벨기에의 화가 잔 안톤 가레민(Jan Anton Garemyn)이 1778년 아기에게 관장시술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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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필자는 뉴욕 CIA 향미전문가, 프랑스 보르도 와인블렌딩, 일본 사케소믈리에, 이탈리아 바리스타. 미국커피테이스터, 큐그레이더 등 식음료관련 국제자격증과 디플로마를 30여종 취득한 전문가이다. 20여년간 일간지에서 사건 및 의학전문기자를 지냈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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