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 '뮤지컬 밑바닥에서' 박성환 "진짜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더라"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뮤지컬배우 박성환은 선택의 여지없이 ‘뮤지컬 밑바닥에서’ 무대에 올랐다. 왕용범 연출에 대한 신뢰, 작품에 대한 기대 등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작품이기에 ‘뮤지컬 밑바닥에서’ 무대에 오르는 박성환은 배우로서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하류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조명한 창작 뮤지컬. 탄탄하고 매력적인 스토리와 음악으로 초연 당시 한국 소극장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수작이다. 극중 박성환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 배우 역을 맡았다.

박성환은 “내가 뮤지컬에 관심이 없던 시기인 10년 전 ‘뮤지컬 밑바닥에서’가 공연됐더라”며 “지금까지도 ‘내가 어떻게 뮤지컬을 계속 하며 살아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뮤지컬 밑바닥에서’와 같은 좋은 작품에까지 출연하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박성환은 과거 방송 매체를 통해 먼저 대중을 만났다. 아이돌 그룹인 S.N.A의 멤버로 데뷔 한 것. 뜻대로 되지 않아 그만두게 됐지만 그에게 당시 실패는 지금의 성공으로 가는 밑거름이 됐다.

“제가 노력을 안 했다는 게 아니라 정말 시기나 모든 것들이 어려운 때가 있었는데 계속 뮤지컬을 해온 게 신기해요. 뮤지컬에 대해 잘 몰랐던 시절에 교수님이 뮤지컬을 추천해주셨어요. 처음으로 뮤지컬, 연기 관련 두 과목에서 A+ 성적을 받으면서 너무 신나고 재밌었죠. 제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연기와 춤, 노래뿐이었는데 뮤지컬이라는 장르 하나에 이게 다 들어있는 거잖아요. 그 때부터 공연하고 상도 받고 ‘그리스’로 데뷔까지 하게 됐어요. 정말 운명 같은 시작이었죠.”

10여년간 뮤지컬배우로 활동하며 박성환이라는 배우 역시 단단해졌다.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한 뮤지컬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욱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됐다. 그러던 중 왕용범 연출과의 만남은 그의 뮤지컬배우 인생에 큰 힘이 됐다.

“2013년에 왕용범 연출님을 처음 만났어요. 사실 그 때 ‘뮤지컬을 그만 둬야 하나’ 하던 시기였어요. 6개월 동안 작품이 없으니 먹고 살 길이 막막하더라고요. ‘천직으로 평생 가져갈 수는 없는걸까’ 생각하던 찰나 이성준 음악감독님 소개로 왕용범 연출님을 만나게 됐고, ‘잭 더 리퍼’ 오디션도 보게 됐어요. 절실하게 연습해서 갔는데 쉬는 기간이 있었다 보니 잘 못했죠. 근데 잘 하고 싶어하는 절실한 눈빛이 왕연출님께 보였나봐요. 그렇게 함께 하게 됐죠.”

슬럼프에 빠졌던 그를 다시 무대 위로 올려준 연출이기에 왕연출이 부르면 당연히 달려가겠다는 마음이다.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의 은혜는 절대 잊을 수 없지 않나”라며 “‘뮤지컬 밑바닥에서’ 역시 왕용범 연출님 작품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당연히 출연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왕용범 연출님과는 5년 정도 됐는데 지금 저한테는 거의 큰 형이고 아버지 같고 선생님이고 그런 존재예요. 못하면 막 꾸짖고 뭐라고 하지만 좋을 때는 한없이 좋으시고 저한테는 은인이죠. 왕연출님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어요. 물론 혼날 때는 마음이 안 좋지만 그로 인해 부족함을 알게 되니 배우로선 좋죠. 사실 이번엔 너무 깊게 들어가서 공연 직전까지도 연출님께 많이 혼나고 힘들었어요. 넘버도 너무 높아 힘들었고요. 너무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배우 역은 박성환에게 ‘내가 이렇게 못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만큼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고, 그가 연기하는 배우 역의 성격은 실생활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멍 때리는 시간도 많아지고 본능적으로 구석에 가게 되고 자신감도 떨어지더라고요. 막 숨고싶어지고. 그러니 순간적으로 ‘이러면 내가 못 해낼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정신을 다잡고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술도 안 마셨어요. 밥도 챙겨 먹고 고기도 먹고 내 몸을 다독여주면서 많이 챙겨줬어요. 공연 준비하면서 이렇게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었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박성환은 극중 맞기도 많이 맞고, 감정적으로도 극으로 치닫는다. “맞는 것에 대해선 겁나지 않는다”는 그는 오히려 “매일 슬픈 정서를 만들어내는 게 너무 힘든 작업”이라고 고백했다.

“공연 시작 전까지도 제가 하는 게 너무 마음에 안 들었고 정말 다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될 정도죠. 심적 부담감도 너무 많았고 정식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되게 힘들었나봐요. 그렇다고 어디 아픈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진짜 밑바닥으로 끌어 내리더라고요. 은연중에 10년동안 활동 해오면서 기본은 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됐었나봐요. 근데 이번 작품을 통해 진심으로 전 못하는 배우라는 걸 느꼈죠. 이렇게 안일하게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초심으로 돌아갔어요.”

박성환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작품이지만 이는 곧 박성환의 배우로서 도약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는 “극복을 못 했다면 공연을 못 했을 거다. 심리적인 부분은 거의 극복했다”며 “이젠 관객들에게 어떻게 내 감정을 전달 할 수 있냐의 차이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너무 세게 다가왔어요. 어마어마하더라고요. 한 순간 머리가 아파지긴 했지만 척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거짓말 하는 걸 내 스스로가 알아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통해 연기적인 대사와 넘버가 일체 돼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주제가 밑바닥이라고 해서 진짜 완전 현실적인 밑바닥을 얘기하는 것 같진 않아요. 감정들이 극대화된 밑바닥을 얘기하죠. 그런 부분을 포인트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편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오는 5월 21까지 서울 학전 블루에서 공연된다.

[뮤지컬배우 박성환. 사진 = 쇼온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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