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우연이라는 선물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모든 우연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우연은 내 안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동물과의 만남도 그 중 하나다. 동물은 당신 삶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일러주는 계시일 수 있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실화다. 2007년 끼니를 굶으며 노숙자로 지냈던 버스킹 뮤지션 제임스 보웬은 우연히 만난 고양이 밥을 치료해준다. 그는 밥과 함께 버스킹 공연을 펼치며 유명해졌고, 이 과정을 책으로 출간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는 벌어들인 수입으로 노숙자의 재활을 도우며 살고 있다. 보웬은 절망의 순간에 밥을 만나 뮤지션의 삶을 이어갔다. 만약 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우연은 선물처럼 찾아온다.

실화는 아니지만,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의 고양이도 가난한 포크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의 정체성을 대변한다(이 영화는 1960년대 포크 뮤지션 데이브 반 롱크의 전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데이비스도 보웬처럼 집이 없어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는 신세다. 어느날 골파인 교수 집에 하루 자고 나오는 길에 고양이 한 마리와 동행하게 된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고양이가 도망가고, 데이비스가 다른 고양이를 잃어버린 고양이로 착각해 데리고 다니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다가 결국 극의 마지막에 도망친 고양이와 조우한다. 그때 골파인 교수의 부인은 고양이 이름을 알려준다.

“율리시스.”

율리시스는 오디세우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오디세우스가 누구인가.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기까지 또 다시 10년을 방황한 인물이다. 오디세우스는 온갖 모험과 고생 끝에 ‘귀향’에 성공한다. 그는 수많은 고난, 좌절, 유혹을 물리치고 귀향의 정체성을 지켰다.

골파인 교수의 율리시스는 데이비스에게 포크 뮤지션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는 안내자다. 비록 포크 뮤지션의 삶이 가난과 고행의 길일 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메시지다.

데이비스는 시카고의 ‘뿔의 문’에서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뿔로 만들어진 문과 상아로 만들어진 문이 나오는 두 가지 꿈이 있는데, 상아 문으로 나오는 꿈은 실현되지 않지만, 뿔의 문으로 나온 꿈은 실현된다는 것. 코엔 형제가 ‘뿔의 문’을 등장시킨 이유다.

데이비스는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쓸쓸히 뉴욕으로 귀향했지만, 뿔의 문에 들어갔다는 사실 만으로도 포크 뮤지션으로서의 꿈은 실현됐다. 끝내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힘들고 지친 당신에게 문득 다가오는 우연이라는 선물은, 그것이 고양이가 아닐지라도, 당신 삶에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사진 제공 = 누리픽처스, CBS필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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