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강렬한 반전, 팀 문화가 바뀌었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팀 문화가 바뀌었다.

KEB하나은행은 시즌 전 최하위 후보로 꼽혔다. 첼시 리 혈통사기극으로 갑작스럽게 사령탑이 교체됐다. 신지현, 김정은, 김이슬, 염윤아는 수술, 재활, 휴식을 취했다. 염윤아가 극적으로 개막과 동시에 복귀했다. 그러나 신지현, 김정은, 김이슬은 2라운드까지 단 1초도 뛰지 못했다.

외국선수 드래프트 6순위로 뽑은 에어리얼 파워스도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결국 12순위 나탈리 어천와, 사실상 13순위 카일라 쏜튼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1라운드서 전패했다. 그러나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석패가 대부분이었다.

2라운드서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탰다. 우리은행에만 패배했다. 심지어 전반전에는 대등한 승부를 했다. 그리고 나머지 4개 구단을 모두 눌렀다. 4승6패, 순식간에 공동 3위로 뛰어올랐다. 최하위 신한은행에 단 1경기 앞섰다. 그러나 2위 삼성생명에도 단 1경기 뒤졌을 뿐이다.

지난 시즌 첼시 리와 버니스 모스비로 확률 높은 정통농구를 했다.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간 원동력였다. 하지만, 공수의 세부적인 조직력은 매끄럽지 않았다. 골밑에 공을 투입한 뒤 나머지 선수들이 서있는 경향이 짙었다. 볼이 제대로 돌지 못했다. 내, 외곽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우리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서 처참히 깨졌다.

이환우 감독대행이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았다. 빠른 시일에 팀 컬러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센터 위주의 정통농구를 고집하지 않는다. 국내선수들, 외국선수들 모두 효율적이고 유기적인 패스게임을 통해 쉴 새 없이 찬스를 만든다. 개개인의 역량은 지난 시즌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공격의 유기성과 효율성은 훨씬 더 좋다.

무빙 오펜스가 제법 매끄럽게 이뤄진다. 상대팀으로선 올 시즌 하나은행이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 훨씬 까다롭다. 하프코트 존 프레스, 맨투맨 프레스도 지난 시즌보다 끈끈하다. 이 과정에서 김지영, 이하은 등 젊은 선수들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 자연스럽게 팀 스쿼드를 강화시켰다. 1라운드서는 경기막판 승부처를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2라운드를 치르면서 고비를 넘고 이기는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체질개선에 성공했다.

이 감독대행은 어떻게 빠른 시일에 팀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을까. 그는 올 시즌 전까지 KT&G, 전자랜드 등 KBL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 감독대행의 부인이 국가대표 슈터 출신 권은정 씨다. 때문에 이 감독대행은 여자선수들을 효과적으로 대하는 노하우가 있다고 봐야 한다.

디테일하게 접근했다. 이 감독대행은 "팀 분위기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천와를 영입한 뒤 미국 스타일을 적용했다"라고 털어놨다. 몇 가지 원칙을 정해서 반드시 지키기로 했다. 이 감독대행은 "새롭게 정한 약속을 문서로 만들었다. 국내선수들은 물론, 어천와와 쏜튼에게도 사인까지 받았다"라고 했다.

대표적인 게 볼데드 상황서 5명의 선수가 모두 모여 간단히 얘기를 주고 받는 것이다. 이 감독대행은 "매 순간 작전타임을 부를 수는 없다. 선수들끼리 풀어갈 수도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로 긴밀하게 의견을 나누면서 주인의식과 팀 케미스트리가 강화됐다. 물론 실제로 볼 데드가 될 때마다 5명 모두 모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팀들보다는 확실히 코트에서 자주 모인다.

더욱 인상적인 건 볼데드 상황서 모이라는 시그널을 고참뿐 아니라 신인 포함 모든 선수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2년차 김지영이 주장 백지은과 곧 돌아오는 최고참 간판스타 김정은도 부를 수 있다. 이 감독대행은 "어천와에게 얘기를 들고 받아들였다. WNBA는 그렇게 한다. 작전타임 못지 않은 효과가 있다.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라고 했다. 그 결과 경직된 선, 후배 문화가 사라졌다. 그리고 조직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 감독대행은 시즌 전부터 공격제한시간 5초가 남았을 때는 누구든 개인기술로 득점하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강이슬에겐 7~8초 정도가 남아도 스스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조직의 효율성이란 프레임 속에서 개인의 개성과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물론 비 시즌부터 철저하게 준비했다. 김지영은 "여름에 밤 늦게까지 스킬트레이닝을 했다"라고 회상했다.

이런 변화들은 경기 도중 크게 표시가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조그마한 변화가 모이고 모여 팀 문화가 달라졌다. 팀 전력 자체가 좋아졌다. 그 결과 하나은행은 순위다툼의 핵으로 떠올랐다. 이젠 누구도 하나은행을 쉽게 보지 못한다. 이 감독대행은 "선수들이 여름 내내 고생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감독대행은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아직 다른 팀들이 정상전력이 아니다"라고 했다. 거의 대부분 팀이 부상자가 돌아오면 전력이 올라간다. 지금 하나은행은 상대 팀들과 대등하게 싸우는 수준일 뿐이다. 때문에 하나은행의 진정한 저력은 시즌 중반에 다시 확인하는 게 옳다.

지금도 약점들이 있다. 승부처 경기운영과 2점을 꼬박꼬박 넣을 확실한 에이스의 부재다. 예를 들어 2일 KB전은 극적으로 이겼다. 하지만, 4쿼터에 추격을 허용한 건 여전히 경기 도중에도 기복이 있다는 뜻이다. 강아정을 효과적으로 봉쇄하지 못했다. 자칫 전열이 흐트러지면 언제든 크게 무너질 수 있는 팀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은행도 경기를 치를수록 전력이 더 올라갈 여지가 충분히 있다. 하나은행 역시 돌아올 부상자들이 있다. 김정은은 복귀가 임박했다. 실전을 통해 공수의 디테일을 끌어올릴 시간적 여유도 있다.

사령탑의 섬세한 리더십이 팀 문화를 바꿨고, 팀 전력을 끌어올렸다. 하나은행의 강렬한 반전은 현재진행형이다.

[하나은행 선수들.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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