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에서 뛰는 첼시 리, 아무런 힘 없는 WKBL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충격이다. 혈통 사기극으로 한국농구에 먹칠을 했던 첼시 리가 불가리아에서 버젓이 뛰고 있다.

첼시 리는 2016-2017시즌 불가리아 여자프로농구 하스코보2012서 뛴다. 해외농구 전문사이트 유로바스켓에 리와 하스코보2012를 검색하면 그렇게 나와있다. 유로바스켓에 따르면 리는 이미 이 팀에서 지난 22일 몬타나2003을 상대로 주전으로 출전, 첫 경기를 치렀다. 기록은 19점 9리바운드. 31일과 내달 6일 리그 두~세번째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리는 2015-2016시즌 WKBL KEB하나은행과 국내선수 신분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시즌 후 여자농구대표팀 합류를 위해 특별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혈통 사기극이 드러났다. 각종 서류조작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면서 한국농구계가 발탁 뒤집혔다.

하나은행은 지난 8월 리와 에이전트 코리 맥코이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계약규정에 따라 리의 지난 시즌 연봉의 2배, 에이전트 수수료, 리가 지난 시즌 WKBL에서 받은 신인왕, 각종 개인타이틀에 의한 상금까지 모두 돌려달라고 했다. 하나은행은 WKBL로부터 지난 시즌 리의 개인성적, 팀 성적이 말소되면서 각종 상금 환수조치 처분을 받았다. 구단으로선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 3개월의 조정기간이 끝났다. 하나은행과 리의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하나은행 관계자와 농구관계자들에 따르면, 긴 공방이 될 듯하다. 리가 현재 불가리아에서 뛰는데다 국내 검찰의 수사요청도 거부하는 상황(기소중지)서 쉽게 결론이 날 수가 없다.

문제는 리가 WKBL서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놓고도 정작 WKBL이 그 어떤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WKBL은 혈통사기극 직후 리를 영구제명 했다. 그러나 리가 타 리그에서 뛰면 그 자체로 징계효과는 사라진다. 리는 앞으로 한국에서 농구를 하지 않고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면 된다.

농구관계자들의 견해, 법리적 해석에 따르면 리가 지난여름 WNBA 워싱턴 미스틱스와 계약을 맺고 시범경기를 뛴 뒤 방출된 사실 자체로 WKBL와 하나은행이 리의 이적에 동의(이적동의서, 즉 ITC 발급)한 것으로 간주됐다.

때문에 리가 불가리아에서 뛰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로바스켓에 등재된 리의 프로필에는 국적 미국, 전 소속팀 WNBA 워싱턴이라고 나와있다. 결과적으로 WKBL과 하나은행은 뒤통수를 맞았다. 리 제재 과정에서 영구제명 외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한 WKBL의 안일한 대처가 낳은 뼈아픈 결과다.

한 농구관계자는 "WKBL이 사태 직후 재빨리 FIBA에 공조를 요청해서 리가 워싱턴 캠프에 합류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리가 워싱턴에서 뛰었기 때문에 WKBL도 리의 불가리아 진출에 할 말이 없다. 이건 외국선수들이 계약파기 후 타 리그로 옮기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라고 성토했다. WKBL은 사태 직후 FIBA에 깊이있는 공조를 요청하지 못했다. 외교력, 행정력의 빈 틈이 드러났다. 리가 불가리아에서 뛰면서 WKBL만 우스운 꼴이 됐다.

첼시 리 혈통사기극에 의한 추후 제재조치는 WKBL의 위상과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이번 사태로 WKBL이 전 세계에 행정적으로 빈틈 없는 시스템을 자랑하는 리그가 아니라는 현실을 노출했다. 그렇다고 WKBL이 세계 농구계에 막강한 영향력과 외교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원을 보유한 것도 아니다. 첼시 리 사태가 재발해도 WKBL은 언제든 이런 식으로 뒷통수를 맞을 수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신선우 총재는 아직도 합당한 책임과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농구 팬들의 비난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는 모양새다. 지난 25일 개막 미디어데이서는 최소한의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농구관계자는 "신 총재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데 무슨 명분으로 첼시 리가 다른 나라에서 뛰는 걸 막겠나"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첼시 리 사태로 WKBL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 총재가 이 상황서 한국농구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첼시 리(위), WKBL(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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