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럭키’ 유해진,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2010년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촬영 당시, 극중에 거대한 쓰레기처리장이 등장했다. 배우와 스태프는 공사용 마스크를 썼다. 부산의 쓰레기처리장은 쓰레기가 뿜어내는 메탄가스 때문에 일반인은 1시간 이상 견디기 힘들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초, 악취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스태프가 속출했다. 악취에 효과가 있는 액상 약을 먹어가며 견뎠다. 장석구 역을 맡은 유해진은 처음에 놀라는 듯 하더니, 그 다음부터 냄새 따위야 어떠냐는 자세로 신들린 연기를 펼쳤다.

당시 제작부장의 회고에 따르면, 유해진은 “아침에 처음 왔을 땐 못 견딜 것 같았는데 계속 있으니까 안에서 도시락도 먹을 수 있겠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스태프는 유해진의 정신력에 경악했다.

유해진은 이런 배우다. 비중이 작든, 크든 몰입한다. ‘왕의 남자’에서 광대 패거리의 맏형 육갑 역을 맡았을 때, 크랭크 인 두 달 전부터 사물놀이, 춤사위 등을 배웠다. 무명시절엔 3년간 현대무용을 배웠다. 철저한 준비가 오늘의 유해진을 만들었다.

당시 유해진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는 법이죠. 주연이든, 단역이든 상황에 맞게 연기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첫 단독주연을 맡은 코미디 ‘럭키’가 4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열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유해진의 디테일한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극중에서 무명배우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실제 배고픔을 참아가며 단역을 전전했던 자신의 경험을 녹여냈다.

일각에서는 ‘럭키’의 흥행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기적일까. 1997년 ‘블랙잭’으로 데뷔한 이후 거의 20년 동안 배우의 한 우물을 파고든 유해진의 노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우공이산.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성공한다. 유해진은 오늘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을 위해 달린다.

20년을 참고 기다린 그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사진 제공 = 쇼박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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