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모비스 新라이벌? 조건은 갖춰졌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조건은 갖춰졌다.

오리온과 모비스는 2016-2017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다. KCC, KGC까지 4강을 형성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4강 중에서도 오리온과 모비스가 조금 더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서로를 넘어야 우승이 가능하다.

프로농구 흥행이 예전만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강력한 라이벌이 없기 때문이다. 매 시즌 전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선수들이 바뀐다. FA 이동, 트레이드도 잦다, 결국 팀들의 전력 변화가 심하다. 결정적으로 매 시즌 강력한 1강을 위협하는 팀들은 조금씩 부족했다. 준비부족, 부상 등의 악재를 극복하지 못했다.

올 시즌에는 오리온과 모비스가 새로운 라이벌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다. 두 팀은 지역, 모기업 특성 등 외부적 요인으로는 라이벌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순수하게 전력만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수도 있다. 지난 시즌에도 4강 플레이오프서 혈투를 벌였다. 결과는 오리온의 3연승이었지만, 내용은 팽팽했다.

▲전력

전력에 물 샐 틈이 없다. 오리온은 FA 허일영과 문태종을 붙잡았다. 최대 무기인 장신포워드 라인업을 유지했다. 조 잭슨이 퇴단했으나 오데리언 바셋이 가세했다. 화려함이나 폭발력은 잭슨보다 떨어진다. 그러나 안정성 측면에선 잭슨보다 낫다는 게 오리온의 자체 평가다. 팀 농구 측면에선 바셋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

모비스는 전력의 두 축 양동근과 함지훈이 굳건하다. 찰스 로드는 매 시즌 기본적인 자신의 몫은 해낸다. 여기에 돌파력과 골밑수비력, 경기운영능력을 고루 지닌 네이트 밀러가 가세했다. 뉴 페이스 외국선수들 중 알짜배기다. 결정적으로 초특급신인 이종현과 재능 넘치는 이대성이 각각 적응, 전역과 함께 시즌 막판 위력을 발휘한다.

전력이 KCC, KGC보다 약간 앞선다는 평가다. 물론 오리온은 이현민이 KCC로 이적했다. 바셋이 뛰지 못할 때 경기를 조율할 확실한 국내가드가 필요하다. 모비스는 이종현이 완전하지 않을 시즌 초반과 중반을 어떻게 버텨내느냐가 중요하다. KCC, KGC는 그 빈틈을 틈타 치고 올라올 역량을 지녔다. 이 대목에 의해 모비스와 오리온의 라이벌 구도가 희석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오리온과 모비스는 추일승 감독, 유재학 감독의 존재감 자체가 전력이다. KBL에서 가장 화려한 이력을 지닌 유 감독의 역량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양동근, 함지훈을 제외하고는 멤버 개개인의 역량이 결코 리그 최상이 아닌 모비스에 맞춤형 전술로 부족한 2%를 채울 수 있는 사령탑이다. 그 역량은 대표팀서도 입증됐다.

추 감독은 뛰어난 멤버들 덕을 봤다. 그러나 그 멤버들을 2~3년간 조합하고 조직력을 극대화한 주인공이다. 지난 봄 KCC와의 챔피언결정전은 지략가 추 감독의 역량이 극대화된 시리즈였다. 아무도 해법을 찾지 못했던 안드레 에밋을 디테일한 세깅 디펜스로 잡아낸 게 대표적인 예다. 에밋의 세밀한 특성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구사할 수 없는 전술이다. 오히려 유재학 감독과 추일승 감독의 탁월한 역량이 두 팀의 라이벌 관계를 부각시킬 수 있는 요소다.

▲신경전

적절한 신경전도 있었다. 이종현은 모비스에 지명된 후 "KBL 두목을 잡겠다"라고 했다. 고려대 시절 이승현의 별명이 두목 호랑이였다. 오리온 우승을 이끌며 "KBL의 두목이 되겠다"라는 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 당시(2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

이승현과 이종현은 고려대 선, 후배이면서 절친하다. 그러나 이종현의 말대로 모비스가 이승현을 잡지 못하면 오리온을 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승현은 자신보다 큰 외국빅맨을 잘 막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확한 외곽포도 갖췄다. 올해 대표팀 일정을 소화한 뒤 살이 많이 빠졌지만, 이승현은 이승현이다. 한편으로 이종현이 부상을 털고 모비스에 적응하면 이승현도 부담스러워진다.

이런 상황서 개막 미디어데이 당시 양동근이 "종현이와 함께 챔프전서 두목을 잡고 우승하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난 봄 오리온에 의해 4강 플레이오프서 패퇴했던 아픔을 되갚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승현도 지지 않고 이종현에게 "일단 몸부터 낫고 와라. 왜 내가 두목인지 보여주겠다"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챔프전서 모비스를 꺾고 우승하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들의 발언은 미디어데이용 유쾌한 설전이었다. 라이벌의 긴장감 조성과 흥행을 위해 이 정도 펀치를 주고 받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도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만큼 서로 의식할 정도로 높게 평가한다는 현실인식이 깔려있다.

이들이 이 시기에 주고 받은 얘기들은 올 시즌 오리온과 모비스가 상위권서 경쟁하면서 지속적으로 회자될 것이다. 시즌 중 맞대결을 통해 또 다른 코멘트들이 나올 수도 있다. 라이벌 관계에 선을 넘지 않는, 건전한 신경전은 필수다.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조건은 갖춰졌다. 오리온과 모비스가 올 시즌 새로운 라이벌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오리온, 모비스 감독,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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