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①] 박근형 "'그랜드파더', 한국판 '테이큰'이라고요?"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오는 31일 개봉을 앞둔 '그랜드파더'는 노장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한국판 '테이큰'으로 기대받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의 예비 관객들 영화평에는 "테이큰을 뛰어넘길", "테이큰이 원작인가"라는 내용의 댓글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그랜드파더'는 비정한 사회를 향한 노장의 처절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색달랐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한 호텔에서 멋쟁이 노신사 박근형을 만나 직접 작품에 대해 들어봤다.

◆ "'그랜드파더', 해외서도 통할 작품"

"'테이큰'은 단순 주인공이 딸을 구하기 위해 범죄 조직과 싸우는 오락 영화잖아요. '그랜드파더'는 노장이 투혼을 벌이는 건 같지만 이를 통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내가 안 해도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하는데 무슨 죄냐'는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사람의 모습을 꼬집기도 하죠. 굳이 비교하자면 '그랜 토리노'가 떠오르네요. 관객들이 저희 영화를 보신다면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분명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거예요."

특히 박근형은 "'그랜드파더'가 만약 국내에서 외면당한다면 해외에서라도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랜드파더'는 현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희생에 걸맞은 예우를 받고 있지 못하는 현실의 참전용사, 물질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개인주의 사회에 살아가면서 변해버린 우리들의 모습, 이로 인한 가족간 소통의 부재 등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소통이라는 휴먼드라마 틀 속에서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노장의 액션 누아르물이다.

박근형이 맡은 기광은 한때 베트남 참전용사였지만 지금은 고물 버스기사로 외롭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전쟁의 트라우마와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해 알코올에 의지한 채 지낸다. 이 때문에 떠나갔었던 아들의 사망 소식을 어느 날 갑자기 접하고, 마지막 남은 혈육 손녀와 마주하게 된다. 이후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 위기에 처한 손녀를 구하기 위해 죽음조차 불사한다.

"정말 가족간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에요. 가장 좋은 기계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소통을 안하고 사는 우리잖아요. 너무 사회에서 경쟁을 부추기다 보니까 이렇게 변한 거 같아요. 사람답게 살려 하는 마음가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저와 같은 노인들은 꿈을 포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활력이 있을 거에요."

◆ "촬영 중 응급실 두 번이나 실려 가"

박근형은 기광 역을 맡아 노장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아무리 57년차 관록의 배우라고는 하지만, 일흔 여섯의 나이에 도전하기엔 여러 모로 쉽지 않은 캐릭터였던 게 사실. 저예산으로 열악한 촬영 환경 속에서 장도리 액션부터 대형 버스 운전 등을 모두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폭염을 견디고 열연을 펼치다 결국 두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갔음에도 곧바로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정말 못 말리는 연기 열정이었다. 스스로 촬영 몇달 전부터 액션 연습을, 1종 운전면허 취득을, 체격 키우기를 자처했다.

"제가 액션을 직접 소화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어렵지 않게 짜여져 흉내낼 수 있었어요. 액션 팀에게 단기속성으로 배웠습니다. 또 기광 역에는 우람한 체구가 어울릴 것 같아 일부러 근육을 키웠어요. 한 달 정도 6가지의 근력운동을 해 몸무게를 불렸습니다. 그리고 극 중에서 기광이 버스 운전기사이기 때문에 1종 운전면허 취득에 도전했습니다. 저는 원래 2종보통 운전면허 소지자였거든요. 몇 번 떨어진 뒤에야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제가 버스를 몰고 스태프들을 태워 다니기기도 했어요. 하하."

연기는 두말할 것 없이 단연 완벽했다. 많은 대사 없이도 고독한 노년의 삶, 손녀에 대한 애틋함,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비통함, 복수심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내공을 자랑했다.

결국 박근형은 '그랜드파더'로 42년 만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달 열린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 남우주연상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 "'그랜드파더' 위해 홍보요정 자처"

tvN '꽃보다 할배' 시리즈 말고 좀처럼 예능에선 볼 수 없던 박근형이 29일 방송되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다.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 '홍보요정'을 자처, 출연이 성사됐다고 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마침 연극 '아버지'도 막을 내리고, 3주 정도 여유가 생겼어요. '그랜드파더'는 제게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기 때문에 홍보 팀에 이 시간을 충분히 이용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냉장고를 부탁해'에 제가 좋아하는 후배 김미숙과 출연하게 됐어요."

아내의 반대도 무릅쓰고 '냉장고를 부탁해'의 녹화를 진행한 그.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아무래도 냉장고를 공개해야 하니까 아내가 반대하더라고요. 그래서 냉장고를 그대로 녹화장에 가져가지 않고 안에 내용물만 옮기는 걸로 타협을 봤죠. 녹화는 무척 재밌었어요. 제가 흥이 많아서 입담이 뒤쳐지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곰팡이가 핀 음식이 발견돼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하."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그랜드파더' 스틸]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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