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②] "할배 아닌 '꽃청춘'"…박근형, 이 배우가 사는 법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지금도 뭐든지 다 도전하고 싶어요"

박근형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열정의 불꽃은 해를 거듭할수록 불타오르고 있다. 얼굴에 내려앉은 주름이 무색하게 '꽃보다 할배'보다는 '꽃보다 청춘'이 더 걸맞은 배우다.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고, 늘 꿈을 품고, 젊은세대와 소통에 앞장서 변화를 꾀하고 여전히 뜨겁게 연기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노장의 액션 누아르물 '그랜드파더'라는 의미 있는 도전을 마친 박근형을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프레이저스위츠 서울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벌써 다음 도전을 기대하고 있는 모습으로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실패해도 상관 없어요. 지금도 뭐든지 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TV를 볼 때도 여러 가지 상상을 많이 해봐요. 저 역할을 내가 연기해보면 어떨까 머릿 속에 그려보기도 하고 대입해보고는 해요."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세월 동안 오롯이 연기에만 집중했다. 그동안 연극 무대, 브라운관, 스크린을 종횡무진 활보하며 출연한 작품만 무려 300편이다. 한 우물만 파고 또 팠지만 여전히 지칠 겨를 없이 파헤쳐 나가는 중이다.

"제가 데뷔했을 당시에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작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때는 궤변만 늘어놓고 마무리됐어요. 지금은 자유롭게 사람 중심의 얘기를 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장르도 풍성해졌고 작품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발전됐죠. 또 '그랜드파더', '디어마이프렌즈' 같은 작품처럼 노인들이 설 자리가 확대되기도 했고요. 앞으로 이 같은 작품들이 더 다양하게 나올 거라고 봐요."

연기에 대한 고민도 멈추지 않는다. 연극 '아버지 Le Pere'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후배 배우들과 연기에 대해 토론을 펼치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한 목표를 향해 가려면 절대적으로 소통이 필요하다고 봐요. 내면과 외면 연기를 융합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덕분에 연극 성과가 아주 좋았답니다."

이어 박근형은 연극 배우들의 고충도 토로했다. "설 자리가 마땅치가 않아 생활고를 겪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생계를 위해 많게는 다 여섯 개의 직업을 갖고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배우 한 명이 나오려면 6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불가능하다. 배우라는 직업이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근형 역시 데뷔 초반 연극 무대에서만 활동할 당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결국 배우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배우는 그의 천직이었다. 마음을 접을 때마다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제가 57년간 연기하면서 배우를 포기하려 했던 적이 두 번 있었어요. 30대 무렵이었죠. 그때 연기를 1, 2년 해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거예요. 그래서 연출로 진로를 변경했었어요. 그러다 뜻하지 않게 대타로 한 번 무대에 올랐었는데 연극상을 받았지 뭐에요. 그래서 다시 배우를 시작했죠. 그러나 경제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었고 이후 아예 고향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어요. 이제 더는 연극을 하지 않을 거라고 밤새 고민했었죠. 이때 연극에 출연해달라는 엽서 한 통을 받으면서 결국 다시 연기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걸어오게 됐네요."

그러면서 당시 가족들에게 뜻하지 않게 상처를 안기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음은 물론, 연기 활동에 주력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38세가 돼서야 아내에게 돈을 벌어다 주기 시작했어요. 제 꿈만 좇아가다 보니 가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거죠. 그때 아이들에게 '또 오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저를 왔다가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잖아요. 저만 욕심껏 일하고 가족들은 점점 뒤로하게 되고 그때 정말 미안했었어요. 이후 제가 한숨 돌리고 보니 어느새 애들은 벌써 대학생이 됐더라고요. 또 그때는 견해 차이가 생겨서 소통이 쉽지 않잖아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때 가족들에게 못 다한 사랑은 손주가 독차지하게 됐다. 박근형은 연예계 대표 '손주 바보'다. 그는 "지금은 손주가 생기면서 당시에 못 해줬던 온 정성을 쏟고 있다"면서 "또 주말에는 꼭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 한다. 주말마다 11명의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데 그 흐뭇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박근형은 이제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노년에도 꿈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다. 꿈이 없으면 죽은 이와 마찬가지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자신의 미래는 무엇일가.

"제 목표는 고향 정읍으로 가고 있어요. 시골은 도시에 비해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극단을 만들어서 저의 재능 기부를 통해 마을 주민들에게 이런 마련해드리고 싶어요. 어떤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연기 수업을 하거나 연극 무대를 꾸며나가는 거에요."

끝으로 박근형은 은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은퇴를 선언하기 보다는 자신을 찾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사라지고 싶다고 한다. "사라진다는 표현은 너무 슬픈 표현이다"고 대꾸하니 초연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허허.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낙엽이 썩어서 밑거름되듯 말이에요. 예술가에게 은퇴란 없어요. 그저 쓰임새가 필요없어져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진다면 대중 앞에서 사라져줘야지요. 그때까지 항상 연기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고 매 작품 최선을 다해 임할 거에요."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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