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환상의 빛’,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빛나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 완결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요시노 히로시의 ‘생명은’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산문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이 시를 소개했다.

그의 영화는 한 사람이 떠난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끼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미세한 결을 따라가고, 호흡한다.

‘생명은’이라는 시는 모든 개체가 상호작용을 통해 의존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데뷔작 ‘환상의 빛’에 대해 “남아 있는 삶 속에 있는 죽음에 대해, 죽음의 그림자들이 삶에 어떤 그림자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싶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유미코(에스미 마키코)는 남편 이쿠오(아사나 타다노부)의 갑작스러운 자살 앞에 당혹스러워한다. 세월이 흘러 타미오(나이토 다카시)와 재혼하지만, 7년의 세월이 지나도, ‘걸어도 걸어도’ 문득문득 일상을 파고드는 이쿠오의 기억으로 힘들어한다.

이쿠오가 자살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재혼한 남편 타미오는 힘들어하는 유미코에게 “아버지가 전에는 배를 탔었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어떤 ‘환상의 빛’이 기차 선로 위의 이쿠오를 끌어당겨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해석이다. 그의 대답이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유미코를 치유하는 가장 근접한 위로였다. 원래 이 대사는 원작소설에는 없다. 죽음과 삶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고 생각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만이 쓸 수 있는 대사다.

타미오의 위로로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은 깊은 상처를 다스린 유미코의 2층 방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유미코 내면의 어둠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삶도 존재한다는 것, 누구에게든 어느날 갑자기 빛에 이끌려 ‘생의 저편’으로 갈 수 있지만, 반대로 그 빛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시켜주고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빛이다.

그렇게 ‘환상의 빛’은 두 번 반복된다. 우리네 인생처럼.

[사진 제공 = 씨네룩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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