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 '위키드' 박혜나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엘파바는 와닿았죠"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 ‘위키드’는 뮤지컬배우 박혜나의 인생 전체를 흔들었다. 박혜나는 지난 2013년 ‘위키드’ 한국 초연 엘파바 역이라는 인생 최대의 기회를 잡았다. 그 기회는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걸어 왔기에 주어졌고, 묵묵히 자신을 갈고 닦았기에 잡을 수 있었다.

뮤지컬 ‘위키드’는 브로드웨이에서 10년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형 히트작이다. 고전 ‘오즈의 마법사’의 이전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베스트샐러 ‘위키드’를 기반으로 했다. 박혜나는 2013년 ‘위키드’ 한국어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초록 마녀 엘파바 역을 맡았다.

‘같은 배역으로 다시 돌아온 배우 중 가장 기대되는 배우’로 뽑히기도 한 박혜나는 “워낙 감사한 작품이라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 부담감이 플러스가 되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기다려 주신 분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고 고백했다.

“무대라는 예술은 하루가 남아 있지 않잖아요. 하루, 그 날이 끝이고 소멸해요. 다음날 새롭고요. 근데 관객들이 기억해주시기 때문에 살아남는 거예요. 그만큼 관객들이 기다려 주셨다는 게 나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다시 하는 거고 해왔던 거니까 더 잘 하고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실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라 부담감도 컸는데 ‘위키드’를 1년간 했던 게 정말 크더라고요. 무대에 섰을 때 여유가 더 생겼죠. 물론 무섭고 두려운 마음도 크지만 그래도 그 전에 비해서는 아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까 책임감도 많이 따라요. 몸이 알아서 움직여주고 입이 알아서 말해줄 때가 있어요. ‘아! 내가 정말 1년을 했구나’ 했어요. 되게 신기하고 무대에서 항상 새로워요.”

오랜 기간 ‘위키드’ 무대에 섰지만 매 순간이 박혜나에겐 새롭다. “1년이나 살아 숨 쉰 공간인데 진짜 무대는 살아 있는 공간”이라며 “매일 매일 같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배우의 감정적인 면은 단단해지는 게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 있어 엘파바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같은 의미나 뜻을 반복하지는 않게 해요. 어제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다르고 또 할 게 많아서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너무 다르죠. 어느 정도 똑같이 맞물려 있으면 괜찮다고 하지만 그 안에 계속 살아야 집중할 수 있어요. 기계적으로 반복을 하려고 할 때 그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면 오히려 실수를 해요. 오히려 공연에 집중하게 되니까 매일 매일 새로웠고, 그 집중으로 들어가는 단계가 저한테 중요해요. 매일 매일 처음에 단추를 끼는 기분이고 하루하루가 도전이에요. 물론 좀 더 즐기고 자유로워진 건 있는데 무대는 항상 두렵긴 해요.”

우정을 그리는 ‘위키드’인 만큼 동료들과의 팀워크도 박혜나를 더욱 ‘위키드’에 빠져들게 한다. 2016 ‘위키드’에 새롭게 캐스팅된 아이비, 차지연 역시 ‘위키드’를 통해 맺게 된 소중한 인연.

그는 “아이비는 다른 길을 걸어오다가 무대에서 엘파바, 글린다로 만나보니 플러스 되는 부분이 있다. 말 할 것 없이 글린다에 너무 어울리고 에너지가 좋아 믿고 간다”며 “차지연 언니는 무대 위에서 너무나 좋은 카리스마, 매력이 있다. 묘한, 독특한 그 부분이 엘파바와 플러스 되고 내면에 가진 엘파바와 교집합 된 부분이 많다. 그런 면에서 또 다른 엘파바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초연부터 함께 했던 정선아에 대해선 “선아는 뭐 최고다. 진짜 너무 최고다. 정말 사랑스러움의 끝을 달린다”며 금세 함박 미소를 지었다.

“선아를 ‘정의의 선아’라고 불러요. 어릴 때부터 뮤지컬을 해와서 그런지 뮤지컬에 대한 애착이 크고, 뮤지컬 배우라는 것에 책임감이 크죠. 나서야 될 때 나서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무대만 책임 지는 게 아니라 무대 밖에서도 다 어우러져서 케어 하는 에너지도 너무 좋아죠. 성격도 너무 좋고 외모도 좋고 같이 공연 하면 너무 행복하고 믿고 같이 할 수 있는 배우예요.”

‘위키드’ 초연 전후로 박혜나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초반엔 ‘위키드’에 전념하느라 잘 느끼지 못했지만 확실히 타이틀롤을 맡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인생을 바뀌게 했다. 특히 ‘위키드’는 무대에서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뮤지컬이다보니 관객들의 반응에서 오는 기쁨도 더 커졌다.

“제가 맡은 역할로 인해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다는 반응을 보면 너무 좋아요. 강의를 해달라는 분들도 많아서 제 삶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죠. 예전에는 내가 내 일을 하기 급급하고 더 먼 곳에 목적을 두고 나아가는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무대 위에서 잘 해야 되는 건 기본이 되었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무대 위에서 하는 행위들이 여러 사람한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무대 내려와서 삶에 있어서 연장선상이니까 책임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위키드’ 이후의 삶이 정말 감사해요.”

자신과 많이 닮아 있던 엘파바를 만났기에 관객들에게도 진심이 전해졌다. “엘파바는 너무나 와닿았다”고 고백한 박혜나는 “분석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읽으면 이해가 갔다”고 털어놨다.

“캐릭터와 나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쓰는 언어 스타일이 다르고 쓰는 행동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걸 내 것인 것처럼 입히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머리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드라마가 워낙 탄탄하니까요. 누구나 읽으면 이해하고 엘파바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잘 쓰여진 작품이라는 걸 캐릭터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인간의 부류를 대표하면서도 모든 인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캐릭터예요. 이해할 수 있는 건 그 캐릭터를 접하고 있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저 역시 예전에는 피해의식이 좀 컸어요. 성취하고 이루고자 하지만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거기에 좌절하진 않았고, 도전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았어요. 목표가 있었고 그 안에서 즐거웠죠. 그런 부분이 엘파바와 닮은 것 같아요.”

2016 ‘위키드’를 시작하기 전 박혜나의 인생은 또 한 번 달라졌다.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한 것은 물론 뮤지컬배우 김찬호와 결혼도 했다. 박혜나는 “결혼 후 재미있어졌다. 여유로워진 부분도 있고 안정감도 생겼다”며 “뭔가 일생에 있어 모든 것이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면 이제는 같이 지지할, 같이 걸어갈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안정감이 있고 의지가 된다”고 했다.

“이번 ‘위키드’에서는 확실히 여유가 생겼어요. ‘위키드’로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죠. 그래도 과거가 연결돼 있다는 걸 느껴요. 과거 끼우지 못했던 단추를 지금 끼우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항상 뭘 원하던지 그걸 원하는 자격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는 게 몸으로서 다가오죠. 신기해요. ‘역시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나가는구나’ 싶어요. 생각을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말의 힘을 느꼈어요. 무의식 중에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뮤지컬 ‘위키드’. 공연시간 170분. 7월 12일부터 8월 2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문의 1577-3363.

[박혜나. 사진 = 클립서비스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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