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고집불통' 호지슨의 악수(惡手)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내가 본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 중 최악이었다. 전술적으로 매우 서툴렀다. 로이 호지슨은 선수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어떤 포메이션을 써야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英 전설적인 공격수 앨런 시어러의 말이다. 그렇다. 잉글랜드는 자신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했다. 포메이션부터 전술, 전략 그리고 선수 운용까지 모든 게 엇박자였다. 대표적인 예가 ‘전담 키커’ 해리 케인이다. 현지 언론과 팬들은 그런 호지슨을 ‘고집불통’이라 불렀다. 그리고 호지슨의 악수는 결과적으로 잉글랜드의 탈락으로 이어졌다.

#선발 명단

호지슨 감독은 케인과 라힘 스털링 그리고 웨인 루니를 다시 선발로 내세웠다. 아담 랄라나 대신 다니엘 스터리지가 들어온 걸 제외하면 조별리그 1, 2차전과 같았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전에서 선발로 뛰었던 제이미 바디는 벤치로 내려갔다.

공동 감독인 라르스 라거백과 하이미르 함그림손은 4경기 연속 똑같은 베스트11을 구성했다. 포메이션은 전형적인 4-4-2였다. 최전방 투톱에 골베인 시그도르손과 욘 다니 보드바르손이 포진했고 측면에는 비르키르 비야르나손과 요한 베르그 구드문드손이 섰다.

#로이 호지슨

호지슨이 어떠한 의도로 4-3-3을 고집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다. (대회 직전까지 실험했던 다이아몬드 4-4-2는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가 베스트11에 토트넘 소속 선수를 무려 5명이나 배치한 건, 어느정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와 비슷한 전술을 사용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아마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에릭 다이어가 후방으로 내려와 3번째 센터백이 되고 측면 풀백인 카일 워커와 대니 로즈가 높이 전진할 때 스털링과 스터리지(혹은 랄라나)가 중앙으로 이동해 상대 측면 수비를 유인하는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다이어는 확실한 역할을 전달받지 못한 듯 했고, 윙어와 풀백의 연계 플레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특히 스털링은 너무 자주 사이드에 머물렀다. 그로인해 로즈가 올라갈 공간이 없었다. 동선도 겹쳤다. 심지어 스털링은 1대1 상황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아이슬란드전도 개인 돌파 성공률은 40%에 그쳤다.

#다니엘 스터리지

윙어보다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스터리지를 측면에 세운 결정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스터리지는 페널티박스 밖을 겉돌았다. 자주 내려와 공을 잡았고 워커와의 호흡도 어색했다. 결정적인 크로스 상황에서도 타이밍이 매번 늦었다. 스털링의 페널티킥을 이끈 로빙패스는 인상적이었지만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올려야 하는 순간 오른발을 쓰지 않고 한 번 접은 뒤 왼발을 사용했다. 반대편의 스털링도 마찬가지다.

그런 측면에서 스터리지를 박스 근처에서 활용하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웨일스전에서 증명됐듯이 스터리지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위협적인 선수다. 하지만 아이슬란전에서 스터리지는 측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낭비했다.

#아이슬란드

‘얼음 나라’ 아이슬란드의 공격 전개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들은 전체적인 수비라인을 내리고 최전방과 최후방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이때 문제점은 공격으로 나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상대 골문까지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는 롱볼로 상대 진영까지 한 번에 공을 전달했다. 재미있는 건 이 부분이다. 아이슬란드는 측면에서 패스로 상대를 유인한 뒤 반대편으로 크게 공격을 전환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패스 능력이다. 아이슬란드는 제법 공을 잘 소유했다. 점유율과는 별개의 문제다. 오랜 시간 공을 소유하긴 어렵지만 짧은 시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꾸준히 삼각형을 만들었다. 3개의 꼭짓점을 이은 삼각형을 만들 때 완벽한 패스의 길이 열린다. 아이슬란드가 그랬다.

아이슬란드의 득점 장면을 복기해보자. 전반 5분 킥오프 후 공을 잡은 아리 스쿨라손이 전방의 시그도르손을 향해 롱패스를 날렸다. 잉글랜드는 공을 끊어내는데 실패했고 아이슬란드의 스로인이 됐다. 한 번에 잉글랜드 진영까지 넘어온 아이슬란드는 롱스로인과 아나손의 헤딩 그리고 라그나르 시구르드손의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트렸다.

전반 18분 역전골도 아이슬란드의 롱패스로부터 시작됐다. 왼쪽 측면에서 짧은 패스로 잉글랜드 선수들을 유인한 뒤 아론 군나르손이 반대편으로 공격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비르키르 시에바르손이 연결한 패스는 잉글랜드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삼각형’을 만든 길피 시구르드손, 보드바르손, 시그도르손에 의해 득점에 연결됐다. 대단한 집중력이다.

#후반전

전반 18분만에 양 팀 합쳐 3골이 터졌다. 화끈했던 초반이 지나고 경기는 다소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잉글랜드는 공격하고 아이슬란드는 지켰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잉글랜드 공격은 뻔하게 진행됐다.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호지슨의 선택은 또 다시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그는 컨디션이 떨어진 루니 대신 다이어를 빼고 잭 윌셔를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 15분에는 스털링을 불러들이고 바디를 내보냈다.

혼란은 계속됐다. 스트라이커가 3명이 되면서 측면이 죽고 중앙에 공격이 쏠렸다. 또 다이어 자리로 내려간 루니는 패스 실수를 연발했고 윌셔는 큰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 후반 41분에는 스트라이커가 또 추가됐다. 그제서야 루니가 나오고 마커스 래쉬포드가 들어갔다. 래쉬포드는 사이드에서 3차례 돌파를 성공했지만 박스 안으로 공을 전달하진 못했다. 적절한 시간에 넣지 못하고, 엉뚱한 선수가 나왔다. 호지슨은 끝까지 악수였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AFPBBNEWS]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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