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선수' SK 최승준의 놀라운 반전 [고동현의 1인치]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작년, 아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이런 활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최승준(SK 와이번스)의 작년까지 KBO 통산 성적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2006년 데뷔 이후 지난해까지 1군 무대에 36경기 나서 타율 .164 2홈런 12타점에 그쳤다. 4번 타자로 시즌을 시작한 지난해에도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8경기 타율 .077(26타수 2안타) 0홈런 1타점에 만족했다.

그는 지난해 말 FA 정상호 보상선수로 SK에 지명됐다. 오랜 기간 뛰었던 LG를 떠나 고향팀(동산고 출신)으로 향했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홈런을 여러차례 날리며 SK팬들을 설레게 했지만 시범경기가 되자 '역시나인듯'했다. 바라던 홈런 대신 삼진만 나왔다. 시범경기 타율은 .100(40타수 4안타)에 불과했으며 삼진은 25개나 당했다. 개막전에는 1군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퓨처스리그로 향했다.

4월 4일 엔트리에서 제외됐던 그는 4월 20일 1군에 복귀했다. 이후 서서히 기회를 살리며 입지를 다졌고 이제 어느덧 SK 타선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몇 가지 기록으로 그의 활약을 조명한다.

[사실 하나] 10홈런 이상 때린 타자 중 최소타석

27일 현재 최승준은 11홈런을 때려 이 부문 공동 19위에 올라 있다. 최승준의 예전 성적을 생각하면 이미 상전벽해지만 다른 선수들과 비교한 숫자만 보면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진가는 '타석 당 홈런'에서 드러난다. 최승준은 4월 말까지 2군에 있었다. 이후 1군에 있지만 확실한 주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상황에 따라 벤치에서 경기를 출발하는 경우는 최근에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최승준의 올시즌 타석은 151차례에 불과하다. SK 타자들 규정타석인 223타석에 71타석이나 부족하다. 그럼에도 최승준은 리그 전체에 31명 밖에 없는 두 자릿수 홈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31명의 타자 중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타자는 최승준을 포함해 4명 뿐. 양의지(두산 베어스)와 송광민(한화 이글스), 김상현(kt 위즈)가 그들이다.

하지만 김상현의 경우 규정타석과 단 2타석 차이(팀 217타석, 김상현 215타석)이며 송광민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한화 규정타석이 213타석, 송광민은 200타석이다. 양의지는 팀 규정타석이 220타석인 가운데 188타석에 들어섰다.

다른 27명의 타자는 모두 규정타석에 진입해 있다. 최승준의 타석 당 홈런수는 13.7타석 당 1홈런.

이는 홈런 1위인 에릭 테임즈(NC 다이노스·12.2타석 당 1홈런), 2위 김재환(두산·12.5타석 당 1홈런)과도 큰 차이가 아니다. 테임즈와 김재환을 제외하면 최승준보다 낮은 타석 당 홈런을 기록 중인 두 자릿수 홈런 타자는 없다.

덩치에 걸맞게 '맞으면 넘어간다'를 몸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둘] 접전에서, 그리고 수준급 투수 상대로 때렸다

5월 12일 두산전 장원준 상대 솔로홈런 [2점차 열세]

5월 18일 롯데전 린드블럼 상대 만루홈런 [2점차 열세]

5월 19일 롯데전 레일리 상대 솔로홈런 [동점]

5월 21일 KIA전 전상현 상대 투런홈런 [1점차 우세]

6월 4일 두산전 보우덴 상대 솔로홈런 [5점차 열세]

6월 9일 롯데전 박진형 상대 솔로홈런 [1점차 우세]

6월 16일 삼성전 윤성환 상대 3점홈런 [1점차 열세]

6얼 16일 삼성전 김동호 상대 2점홈런 [4점차 우세]

6월 18일 롯데전 레일리 상대 솔로홈런 [동점]

6월 19일 롯데전 윤길현 상대 솔로홈런 [8점차 열세]

6월 25일 두산전 정재훈 상대 솔로홈런 [5점차 열세]

위는 올시즌 최승준의 홈런 일지다. 4월에는 1군에서 거의 뛰지 못했기에 대부분을 5월 중순 이후 때렸다. 40일 정도 기간동안 11홈런을 몰아쳤다. 몰아치기도 돋보이지만 홈런을 때린 상대 투수와 경기 상황을 보면 이 홈런들이 '단순한 숫자를 늘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1개 홈런 중 8개는 장원준, 마이클 보우덴(이상 두산), 조쉬 린드블럼(롯데), 윤성환(삼성) 등의 수준급 선발, 정재훈(두산), 윤길현(롯데) 등의 수준급 불펜을 상대로 때린 홈런이다. 린드블럼, 윤성환의 경우 지난해와 같은 위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타자의 능력이 없다면 홈런이 나올 수는 없다.

정재훈이 46⅓이닝 동안 던지며 맞은 2홈런 중 1개가 최승준의 몫이며 윤길현은 3개 중 하나다. 윤길현의 경우 최승준을 비롯해 3피홈런 모두 SK 선수(박정권, 최정)에게 맞았다.

경기 상황도 주목할 만 하다. 11개 홈런 중 7개가 2점차 이내 승부에서 나왔다. 특히 린드블럼을 상대로 한 만루홈런은 경기를 뒤집는 역전 결승 만루홈런이었으며 6월 18일 레일리를 상대로 때린 홈런과 윤성환을 상대로 때린 역전 3점 홈런도 결승타로 기록됐다.

[사실 셋] 타율과 출루율도 기대 이상

최승준의 기록 중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홈런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다른 기록들 역시 기대 이상이다. 홈런의 경우 '터지면' 이 정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타율과 출루율의 경우에는 이 정도까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거포들에게 삼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최승준 역시 36개의 적지 않은 삼진을 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범경기 때처럼 삼진만 당하는 것은 아니다. 안타와 홈런을 많이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볼넷도 많이 골라내고 있다.

최승준의 타율은 .299. 아직까지 타석 숫자가 적어 한 경기 활약 정도에 따라 숫자가 크게 달라지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3할대 안팎의 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또한 최승준은 20개의 볼넷과 3개의 몸에 맞는 볼을 얻어냈다. 덕분에 출루율은 .404에 이른다. 흔히 타율보다 출루율이 1할 이상 높으면 선구안이 좋은 타자라고 판단하는 가운데 최승준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적까지 품에 안고 있다.

기대대로인 장타율(.598)과 기대 이상의 출루율(.404)이 합쳐져 OPS는 1.002에 이른다.

SK는 지난해 정의윤 트레이드 당시 정의윤에 앞서 최승준을 원한 바 있다. 2016년, SK가 꿈꿨던 최승준은 현실이 됐다.

[SK 최승준. 사진=마이데일리DB]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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