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예의 에필로그] '디마프' 노희경, 韓 감성 작가의 품격

[마이데일리 = 최지예 기자]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는 품격이 넘친다. 사랑과 낭만이, 그리고 이별과 지질함이 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쿡쿡 찌른다. 대사에는 걸쭉한 삶의 철학이 녹아 있다. 결코 고상하지 않은 노 작가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품격'이란 말이 참 잘 어울린다.

1996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단막극 '엄마의 치자꽃'으로 데뷔한 노희경 작가는 매년 거르지 않고 꾸준하게 작품을 내 총 19건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그 중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2011),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괜찮아, 사랑이야'(2014) 등은 웰메이드로 크게 주목 받았다.

지난 5월부터 방영 중인 케이블채널 tvN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 '디마프')는 데뷔 20년인 노희경 작가의 내공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노인들의 삶 속에는 깊은 철학과 연륜이 느껴지고, 박완(고현정)과 서연하(조인성)의 사랑에는 노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살아있다.

'디마프'는 노 작가의 도전이 발현된 이야기다. 이른바 '꼰대'라고 불리는 70대 노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같은 소재가 드라마로 만들어진 사례는 드물다.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 역할로 물러서던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안방극장 단골소재인 20대 청춘의 사랑이나 흥행을 보장할 만한 한류스타는 없다. 오롯이 노 작가 대본과 베테랑 배우들의 사실적 연기,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출만 있다. 변칙과 꼼수 없는, 지극히 기본적이며 완전한 3박자다.

노 작가의 작품은 현실적이다. 극적 장치가 배치됐지만, 결코 미화나 과장이 없다. 우리네 삶에 깃든 사랑과 이별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던가. '인생은 안 아름다워', '인생은 늙은 것들과 젊은 것들의 전쟁이지', '인생은 막장이야' 등 날것의 메시지들은 통쾌함을 넘어 엄숙함마저 자아낸다. '짠하고 슬프고 비참한' 게 진짜 우리 삶이니까. 최근 흥행 트렌드로 자리잡은 아름답고 비현실적인 판타지와는 맥을 달리한다. '디마프'에 눈물을 쏟은 시청자들은 화면 속 어느 지점에서 자신을 보고 과거를 떠올렸다.

알콩달콩 연애 로맨스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드라마와는 달랐다. 남편과 사별하고 극도의 외로움과 마주한 희자(김혜자), 친구와 바람을 피는 남편에 트라우마를 가진 난희(고두심), 흑맥주 한 병을 맘 편하게 마시려 황혼 이혼을 선택한 정아(나문희), 나이 60이 넘어서야 누군가와 맞춰갈 생각을 한 충남(윤여정), 화려한 배우처럼 보이지만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영원(박원숙) 등 6,70대 늙은이들을 통해 인간 군상을 그려냈다. 그 안에 촘촘히 짜여진 이야기는 인간 본연의 감성을 터치하고 큰 울림을 안긴다.

특히, 노 작가의 '디마프'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황혼을 맞이한 노인들의 삶을 통해 20대부터 70대까지 이르는 넓은 연령층의 시청자를 불러 모았다는 것이다. 늙은이들의 삶과 사랑은 2,30대 청춘에게 지혜와 교훈이 되기 충분했다.

지극히 솔직한 현실을 담아내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은 결국 인생은 아름답다는 결론으로 수렴된다. 노 작가는 지질함에서 사랑을,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낸다. 이것이 한국 대표 감성작가 노희경의 품격이다.

[노희경 작가(위)의 '디어 마이 프렌즈' 포스터. 사진 = tvN 제공]

최지예 기자 olivia731@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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