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크리미널’, 기억이식으로 ‘나’는 ‘당신’이 된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오성론>에서 군주와 구두 수선공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군주와 구두 수선공의 두뇌를 서로 바꾸어 이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구두 수선공의 뇌에 왕자의 기억이 이식된다면 구두 수선공은 군주인가, 아니면 그냥 구두 수선공인가.

존 로크는 “어떤 군주의 영혼이 그의 과거 삶에 관한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지닌 채, 구두 수선공의 영혼이 떠나버리는 그 순간 구두 수선공의 신체로 들어가서 생기를 불어넣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과거 군주의 행위에만 오로지 책임을 지는 군주와 동일한 인격으로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기억이 당신의 두뇌에 이식된다면, ‘나’는 곧 ‘당신’이 된다는 것. 이 논리의 바탕은 ‘기억이론’이다. 기억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기억과 그에 연관된 심리적인 상태인 신념, 생각, 감정, 희망, 두려움의 총체(철학자 마클 롤랜즈)이다. 기억은 한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다. 영화에서 줄곧 기억이식을 다뤄온 것도 기억이론 덕분이다.

이 시나리오를 가장 충격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폴 베호벤 감독의 ‘토탈리콜’(1990)이다. 퀘이드(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기억을 제거 당하고, 악당 하우저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두 명의 자아가 한 명의 신체를 공유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기억이식은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기억이식이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가장 최신의 뇌과학 연구에 기반한 영화가 ‘크리미널’이다.

CIA 에이전트 빌(라이언 레이놀즈)은 세계를 전복시키려는 테러리스트에게 쫓긴다. 미사일 시스템 해킹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 CIA는 뇌과학 권위자 프랭크(토미 리 존스)의 도움으로 빌의 기억과 능력을 제리코(케빈 코스트너)에게 이식한다. 제리코는 전두엽 증후군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강력범이다. 빌의 기억을 이식받은 제리코는 난생 처음 감정을 느끼며 빌의 아내 질리언(갤 가돗)을 지키고 테러를 막기 위한 싸움에 나선다.

미래학자 데인 커츠웨일은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에서 뇌 신경의 연결경로를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 신경을 이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험용 쥐에게 기억을 주입해 처음 보는 미로를 한 번에 통과하는 실험이 성공한 적도 있다. 실제 일본에서는 기증받은 뇌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뇌 신경의 연결 경로를 알아내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뇌과학 연구자 정재승 박사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이식 받아 그 사람의 성격 등 캐릭터가 바뀌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크리미널’은 기억이식과 관련된 가장 최신의 이론을 동원해 SF에 리얼리티를 부여했다.

극중에서 뇌과학 권위자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을 뜻하는 ‘프랭크스’이다.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도둑, 살인자, 불한당 등의 시체를 꿰매어 괴물을 만들었다. 프랭크 역시 빌과 제리코의 기억이 혼합된 괴물을 탄생시켰다.

빌의 기억을 이식받은 제리코는 빌일까, 아니면 제리코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빌X제리코일까. 기억이식이 현실화되면, 인간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사진 제공 = 조이앤시네마]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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