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아가씨’ 박찬욱, “‘전복의 쾌감’이 나를 매혹시킨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원작소설보다 강렬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박쥐’를 떠올려보라. 그는 원작의 콘셉트만 가져와 비극과 파국의 드라마를 변주했다. 영국소설 ‘핑거스미스’를 스크린에 옮긴 ‘아가씨’ 역시 원작의 주요 인물 한 명과 중요 반전을 송두리째 들어내는 대담한 발상으로 강력한 라스트신을 향해 달려간다. 그는 어두웠던 앞선 영화들과 달리, “명쾌하고 후련한 해피엔딩”으로 종착역에 내렸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 숙희(김태리)와 아가씨의 후견인(조진웅)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칸 영화제 참석부터 영화 개봉에 이어 홍보 일정까지 쉼없이 달려온 그는 1일 삼청동 카페에서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으로 ‘아가씨’의 작품세계와 차기작에 대한 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칸 영화제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네온 데몬’이다. 특별히 보고 싶었던 이유는 나타샤 브레이어 촬영감독과의 인연 때문이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모 패션브랜드의 의뢰를 받아 단편영화를 찍었을 때,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당찬 여자다. 거구의 이탈리아 스태프를 야단치는데, 여장부 기질이 있더라. 영화는 못 보고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과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정우는 ‘멋진 하루’를 보고 캐스팅하고 싶었다는데.

‘멋진 하루’에서 하정우는 ‘허당’이었다. 허장성세인데, ‘허당성세’라고 해야하나(웃음). 한국남자 특유의 근거 없는 허세와 찌질함이 있었다. 종합적으로 귀엽다. 하정우의 매력이 잘 드러난 현실성 있는 캐릭터였다. 한국남자가 어떤지 알고 싶으면 ‘멋진 하루’를 보면 된다.

-‘박쥐’의 송강호는 시나리오에서 표현되기 힘든 유머를 리듬감 있게 잘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하정우에게도 그런 유머를 기대했나.

그렇다. 완벽한 악당은 이 영화의 톤과 맞지 않는다. 내가 그런 인물에 재미를 느끼지도 않고. 자기는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관객이 보기에는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은 악당. 하정우 특유의 매력과 유머로 표현되길 기대했다.

-외신인터뷰에서 김민희는 귀족적인 우아함과 차가운 침착함이 있다고 표현했던데.

‘연애의 온도’ ‘화차’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털이 긴 흰 고양이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히데코가 이러면 딱 좋을텐데’라고 생각했다. 흰 고양이 같은 배우가 누굴까 생각하니까, 김민희 밖에 없었다.

-뚜아에무아의 ‘임이 오는 소리’를 엔딩곡으로 골랐고, 윤종신에게 프로듀싱을 맡겼다.

착각이 있었다. 이필원, 박인희가 부른 노래인줄 알았는데, 다른 여자 멤버가 불렀더라. 어찌됐든, 나는 초등학교 시절, 박인희가 전 인류 중에 노래를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다. ‘임이 오는 소리’는 아름다운 노래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두근두근 설레게하는 힘이 있다.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가 윤종신과 절친이어서 프로듀싱을 맡겼다. 나는 여성 듀오를 원했다. 두 가수(가인과 슈스케 출신 김민서)가 노래를 잘 불렀다. 나와 조영욱 음악감독은 가요를 잘 몰라서 외주를 맡긴 셈이다. 조 감독이 본편을 게을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웃음).

-‘박쥐’ ‘스토커’에 이어 ‘아가씨’까지 신발을 주요 모티브로 사용하는데.

정석영 작가와 내가 신발을 좋아하는 것 같다(웃음). ‘스토커’의 경우 정 작가와 내가 웬트워스 밀러의 원작을 많이 고쳐서 신발이 들어간 경우다. ‘아가씨’의 신발은 몸종(김태리)과 상전(김민희)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라는 것을 짧게 보여주기 위해 사용했다.

-‘스토커’ ‘박쥐’ ‘아가씨’의 공통점은 집이 또 하나의 캐릭터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박쥐’는 일본식 가옥에 한복을 파는 집이었고, ‘아가씨는 양식과 일식이 섞여 있다.

나는 이질적인 것을 잘 섞는다. 기이하고 낯선 것에 항상 매혹되기 때문이다. ‘박쥐’는 그 집 자체가 초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준다. ‘아가씨’는 조금 다르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폭력적으로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집에 외부인이 들어와 어떤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박쥐’의 뱀파이어 신부(송강호), ‘스토커’의 삼촌 찰리(매튜 구드), ‘아가씨’의 하녀는 모두 외부에서 들어온 인물이다.

예리한 지적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특별히 의식한 것은 아니다.

-칸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아가씨’는 죄의식과 사랑이 서로를 반영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부분의 작품은 죄의식이 주요 테마다. 죄의식을 자주 다루는 이유는.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 크든 작든, 실행에 옮겼든 아니든 죄를 짓는 존재다. 그것을 각성하는 사람이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장되고 극단적인 상황 속으로 인물을 몰아넣어서 그것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죄악과 딜레마의 상황에 놓인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정우가 극 마지막 부분에 하는 대사가 코믹하다.

그때 촬영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내가 “이 장면 뺄까?”라고 했더니, 하정우가 “왜요?”라고 묻더라. 내가 “왜 화를 내고 그래”하면서 찍었다(웃음). 넣기를 잘한게, 여기저기서 폭소를 터뜨리더라. 백작이 자조적인 토크를 하는 것인데, 남자의 알량한 자존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과거 함께 일했던 조감독들이 시사회가 끝난 뒤 내게 다가와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라(웃음).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영화를 자주 만든다.

그렇다. ‘아가씨’의 예를 들자면, 어렸을 때 히데코는 이모부에게 문진(구리로 된 구슬)으로 맞는다. 극 후반부에는 그 쇳덩이와 생김새가 똑같은 방울을 유희의 도구로 사용한다. 시나리오를 읽은 스태프가 “왜 히데코가 역겨운 음란도서 내용을 따라하느냐”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더 이상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순수한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서 ‘전복의 쾌감’을 봤다. 난 전복의 쾌감에 늘 매료된다.

-차기작은 실업자의 살인 이야기를 다루는 ‘도끼’인데, 언제 확정되나.

‘아가씨’ 홍보 일정이 끝나면 각본 마무리 작업에 돌입한다. 7월 중에는 결정날 것이다. 그러나 최종 확정을 장담할 수 없다. 못 찍게 될 수도 있다.

-일본 SF ‘학살기관’ 연출 물망에 올랐는데.

프로덕션 측이 작가와 판권 계약도 하지 않았다. 물론, 하고 싶다. SF 장르인데다 밀리터리 액션이니까.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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