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 '아가씨' 김태리 "베드신·동성애, 그게 중요한 영화가 아녜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베드신이나 동성애로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시는데, 그게 부각되지 않으면 힘들지 않아요. 그게 중요한 영화가 아니에요.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관객 분들이 ‘아가씨’를 많이 보셨으면 하는데 이런 이유도 있어요.”

신예 김태리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로 장편영화에 데뷔했다. 영화 경험이라고는 단편영화 ‘문영’(2015)이 전부. 그동안 극단에 속해 연극 무대도 올랐지만 김태리가 상업 영화의 맛을 본 첫 작품이 바로 ‘아가씨’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김태리가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하녀 숙희 역을 꿰찼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캐스팅, 첫 출연에 주연을 맡아 상업영화에 데뷔했을 뿐 아니라 쟁쟁한 배우, 감독과 함께 칸 국제영화제를 방문하고, 호평까지 거머쥐고 있는 김태리는 신데렐라가 된 소감을 묻자 “아직 얼떨떨해요”라고 말했다.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보시는지도 궁금해요. 재밌게 보셨으면 해요. 편안한 마음으로요. 심심할 때 놀러 나오셔서 보시기에 너무 좋은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웃음) 가족 영화니까 한 번 보시고, 어머니와 또 한 번 보시고 그러셨으면 해요. 가족 영화니까요.”

아직 영화 관련 홍보 활동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신인임에도 당차게 ‘아가씨’ 재관람을 권하는 모습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하녀 숙희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태리가 처음부터 ‘아가씨’ 촬영 현장에서 당당했던 것은 아니다. 박찬욱 감독이 ‘OK’를 할 때도 진짜 마음에 들어서 ‘OK’ 사인을 한 건지, 자신이 더 나은 연기를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어쩔 수 없이 ‘OK’라고 말한 건지 의심하기도 했다. 이런 잡념들은 “뭐 하는 짓이냐. 감독님만 믿어라”라는 김해숙의 조언으로 싹 사라졌다.

“박찬욱 감독님의 디테일한 디렉션이 굉장히 좋았어요. 제가 경험이 없으니까 연기가 다양하지 않아요. 변주가 쉽지 않더라고요. 선배님들은 ‘다르게 해볼까?’라고 말하면 창의적으로 다른 연기들이 나왔는데 전 그런 게 힘들었어요. 감독님께서 하나씩 툭툭 던져주셨는데 굉장히 도움 됐어요. 예를 들어 중요한 대사를 칠 때 ‘고개를 좀 앞으로 숙여볼까’라고 하셔서 그대로 했더니 대사는 같은데 분위기가 확 달라지더라고요. 그런 걸 스스로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점점 나아지는, 성장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스스로는 겸손한 말을 건네는 김태리지만 박찬욱 감독은 연기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고, 큰 배우들과 만나 자기 몫을 할 수 있을 만큼 주눅 들지 않았다며 배우 김태리를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자신이 오디션을 통해 발탁될 것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박찬욱 감독의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다는 데 의의를 뒀던 김태리는 결국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뮤즈가 됐고 박찬욱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원작 소설을 읽고, 시나리오에 몰입하며 점점 숙희가 돼갔다.

“시나리오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어요. 시나리오가 무척 잘 쓰여 있었거든요. 거기에 저라는 살을 좀 붙였어요. 또 저라는 경험 부족자의 허접함도 들어가 있고요. (날 것 같아서 더 좋았는데?) 감독님께서 신인 배우를 쓰고 싶어 하신 이유가 그런 데 있는 것 같아요.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봤을 때 더 재미있는 캐릭터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김태리는 숙희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까지 약 일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아가씨’에 올인했다. 지난 2014년 11월 숙희 역으로 낙점, 지난해 6월 촬영을 시작했고, 올해 6월 개봉을 맞았다. 이 기간 동안 박찬욱 감독과 만나 숙희를 만들어 가고, 운동을 하고,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태닝을 하고, 일본어 연기를 소화하기 위해 ‘열공’했으며, 사람들도 많이 만나며 숙희 캐릭터를 켜켜이 쌓아나갔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에도 오디션 공고 때 공개된 ‘노출수위 협의 불가’라는 조건이 극 중 베드신, 동성애와 만나 무럭무럭 예비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 노출 수위 등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영화가 공개된 후에는 의미 있는 신이라는 평들이 흘러나왔지만 ‘아가씨’의 시사회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파격 수위’가 관심사였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VIP 시사회 때 가족들도 불렀는데 잘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걱정을 좀 던 것 같아요. 베드신이나 동성애로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데, 그게 부각되지 않으면 힘들지 않아요. ‘아가씨’는 그게 중요한 영화가 아니에요.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의 장편 데뷔작으로 충무로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강력히 눈도장을 찍게 된 김태리. 그는 앞으로도 계속 배우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아직은 배우로서의 어떤 방향성이 없어요. 그건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정해 놓는다고 해도 그 길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또 ‘아가씨’ 처럼 좋은 감독님, 선배님, 시나리오를 만나게 된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배우 김태리.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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