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리뷰] 박찬욱의 '아가씨', 매혹적이십니다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매혹적이십니다.”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용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에서 백작(하정우)은 히데코(김민희)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영화 ‘아가씨’ 역시 백작의 평과 다르지 않다. 지독히도 매혹적인 영화가 ‘아가씨’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아가씨’ 역시 3부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는다. 원작이 모티브가 되고 적지 않은 부분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아가씨’는 ‘핑거스미스’와 다른 또 하나의 이야기다. 8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144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담아냈는데, 원작에서 가져올 부분과 버릴 부분을 영리하게 택해 원작을 읽은 관객들도 색다르게 변모한 영화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첫 도전한 시대극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작의 빅토리아 시대를 한국적으로 가져오기 위해 신분제도와 근대적 기관이 공존하는 시대인 일제강점기에 주목, 원작보다 더 풍부한 인물의 갈등구조들을 만들어 낸다. 또 최근의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한층 명확하고 어렵지 않은, 관객들에 더 친근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감독이 밝혔듯 ‘상업영화’로 접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가씨’는 영화를 보기 전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 감독의 연출력, 배우들의 명불허전 연기, 충무로 명품 스태프들의 산물 등 여러 부분에서 놀라움을 안기는 작품이다. 특히 일반 관객의 경우 눈에 도드라지는 김민희와 신예 김태리의 연기에 마음을 빼앗길 것. 최근 매 작품마다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갱신해 온 김민희는 이번 작품에서도 필모그래피의 정점을 찍을 만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 중에서도 낭독회 신은 김민희라는 배우가 얼마나 넓고 깊은 연기력을 지녔는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박찬욱 감독의 뮤즈로 발탁된 김태리는 신인답지 않은 당찬 연기로 앞으로의 활약을 더욱 기대케 한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이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사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많은 대사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대사를 곱씹는 맛이 상당하다. 이들에게 일어난 사건, 진실을 알고 난 후 앞서 지나쳐갔던 대사들이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인지 깨닫게 된다. 아는 만큼 그리고 ‘아가씨’라는 영화를 본 만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한 번보다 두 번째 관람했을 때 더욱 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됐던 동성애, 베드신은 파격적이다. 하지만 외설적이지는 않다. 김태리가 맡은 하녀 역의 오디션 공고에 ‘노출수위 협의 불가능’이라는 조건이 있었던 만큼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동성애, 두 여성의 베드신이라는 기존 쉽게 접하지 못했던 조건들이 곁들여져 일부 관객들에게는 놀라움을 안길 듯 하다. 행위 보다는 이들의 교감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쓰이는 만큼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이 왜 거장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관능과 금기의 세계는 이어지지만 상업적 면모도 놓치지 않았다. 원작을 영리하게 녹여낸 점도 더할 나위 없고, 결말로 치달을수록 눈을 뗄 수가 없는 몰입감도 상당하다. 같은 사건을 다른 시점으로 바라보는 특별한 재미도 ‘아가씨’를 보는 맛을 배가시킨다. 다만, 일부 관객들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이 시대의 아픔과 고민을 녹여내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울 듯도 싶다. 러닝타임 144분. 청소년관람불가. 6월 1일 개봉.

[영화 ‘아가씨’ 포스터.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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