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 유인영이 독한 여자라고? 오해해서 미안해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미안할 지경이다.

유인영은 참 선하고 상냥했다. 인터뷰 전 도도하거나 차가울 거라고 섣불리 확신하고 간 게 잘못이었다.

고양이를 닮은 눈매, 거기서도 삐쭉 올라간 눈꼬리, 뾰족한 콧날에 앙다문, 그러나 끝이 살짝 치올려진 입술. 데뷔 이래 10년 넘도록 나름 여러 배역을 연기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엔 대개 '악녀'로 기억되는 배우 유인영의 얼굴이다.

"제 이미지 때문에 마리가 나쁜 아이로 비쳐질까 봐 걱정했어요."

마리는 얼마 전 종영한 MBC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서 유인영이 맡았던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불쌍한 여자. 첫사랑 지원(이진욱)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 슬픔을 감싸준 민선재(김강우)와 결혼했으나 사실 민선재는 악인이었다. 다행히 지원이 살아 돌아왔지만 불행히 그는 이미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옮긴 후였다.

이런 순애보 역할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의 평가가 내심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악녀' 이미지 탓에 마리의 진심까지 왜곡돼 보일 것만 같아 걱정했다. "초반에는 '어색해', '다른 사람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별 수 없었다. 그저 열심히 연기했고, 마리를 진실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진심은 통했다. 마리가 임신이 거짓이란 것을 알고 오열할 때, 유인영의 눈물에 시청자들의 마음은 함께 울었다. 마지막 장면, 마리가 교도소에 수감된 민선재를 찾아가 "그래도 기다릴게" 고백하며 눈물 떨굴 때는 괜스레 유인영마저 측은했다.

'참 연기 잘하네' 싶었다. 근데 막상 만나 보니 유인영이 마리였다. 오히려 지금껏 연기한 숱한 '악녀'들이 진짜 유인영과는 전혀 달랐다. "사실 예전에는 그런 오해들이 억울할 때도 있었어요"라고 털어놓는 목소리까지 조곤조곤한 게 마리 같았다.

"그래도 '굿바이 미스터 블랙'으로 조금 거리를 좁혔으니까, 다음에는 좀 더 좁힐 수 있지 않을까요."

소속사에선 '댓글은 보지 마라'고 했다. 시청률이 오르면 좋긴 한데 '악녀'로 살면 그만큼 욕도 더 많이 먹는 탓이다. "근데 자꾸만 보게 돼요." 간혹 있는 선플이 용기를 주고 '악녀'를 연기하는 원동력이 되는 덕이다.

"댓글을 슬쩍 보다가 안 좋은 얘기가 있는 것 같으면 그냥 안 보고 마는데, 혹시라도 좋은 얘기가 있으면 읽고 혼자 속으로 '그래 잘하고 있어' 하거든요."

유인영은 애당초 인터뷰를 자주 하는 연예인도 아니었다. 데뷔 초에는 스스로를 포장해 얘기하는 게 괜히 마음에 걸려 집에 돌아가서 끙끙 앓았고, 기자가 '친한 연예인은 누구냐?'고 묻기라도 하면 본인 때문에 상대방의 이름이 기사에 오르내리는 게 미안해 걱정이 한 움큼이었을 정도다.

얼마 전에는 SBS '런닝맨'에 출연했는데 못내 아쉬운 게 있었다. '국민 MC' 유재석과 사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말을 못 걸었단다.

"오빠랑은 두 번째 뵌 거예요. 여쭤볼 타이밍을 놓쳐서 얘기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둘이 나온 스틸 사진이라도 SNS에 올려놨는데, 그걸로 만족하려고요."

TV에 비쳐지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배우였다. 착한 이미지의 배우가 알고 보니 까칠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반대의 경우는 무척 오랜만이었다.

술은 잘 못 마신다는 유인영에게 얼마 전부터 생긴 낙(樂)이 하나 있는데, 잠들기 전 맥주 한 캔, 그것도 하나는 다 못 비우고 반 정도 마시면, 그게 참 맛있다고 한다. 패셔니스타로 유명하지만 "입혀주시는대로 입는 것뿐"이라며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갈 때는 옷 갈아입는 것도 귀찮아 잠옷 위에 다른 옷을 대충 껴입고 모자 푹 눌러 쓰고 후다닥 다녀오는 것도 유인영의 일상이었다.

"'악녀' 역할로 제의가 자주 오지만, 아무래도 시청자 분들이 제게 바라시는 모습과, 또 절 좋아하는 부분이 그런 모습들이니까 그렇게 제의가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그 와중에도 나름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럼 언젠가는 '그래, 내가 한 번 다른 역할을 만들어 주고 싶어'라고 용기 내주시는 감독님도 계시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진 = 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제공-이김프로덕션 제공-MBC 방송 화면]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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