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호수비' 두산 류지혁 "반쪽선수라는 말 싫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반쪽선수라는 말을 듣기 싫다."

두산 내야수 류지혁. 생소한 이름이다. 선린중-충암고를 졸업, 2012년 4라운드 36순위로 입단했다. 그동안 야수층이 두꺼운 두산에서 경쟁력을 어필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일찌감치 군 복무를 마치면서 1군 경험은 28경기에 불과하다.

류지혁은 지난달 30일 광주 KIA전서 9번 유격수로 데뷔 첫 선발 출전, 왜 자신이 1군에 있어야 하는지 증명했다. 환상의 수비력을 과시했다. 1-1 동점이던 2회말 무사 만루. KIA 이성우의 타구가 크게 바운드되면서 투수 장원준의 키를 넘었다. 이때 류지혁이 전진 대시, 2루 베이스 3~4발 앞쪽에서 타구를 잡았다. 타구를 잡자마자 2루 베이스에 커버를 들어온 오재원에게 감각적으로 백토스, 공을 정확히 오재원의 오른손에 배달했다. 2루 베이스를 밟은 오재원이 1루에 송구, 타자주자 이성우마저 아웃시켰다. 이때 3루 주자가 득점하면서 1-2로 역전 당했지만, 류지혁의 감각적인 수비가 단연 돋보였다.

그는 4회에도 김주형의 중전안타성 타구를 기가 막히게 걷어냈다. 우타자 김주형의 잡아당기는 타격을 예상, 3루수 쪽으로 몇 발짝 다가선 상태였다. 그러나 김주형의 타구는 2루 베이스에서 약간 왼쪽으로 날아갔다. 류지혁의 순발력과 정확한 송구능력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건방지게 해라

류지혁은 수비력이 빼어나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송구능력, 타구 커버 범위와 순발력이 수준급이다. 유격수는 물론, 1루수, 2루수, 3루수도 소화할 수 있다. 심지어 유사시에는 외야수비와 포수도 가능하다는 게 본인 설명. 실제 상무 시절 불펜 포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만큼 두산에서 활용가치가 높다. 진정한 멀티플레이어. 류지혁은 그동안 두산 1군에서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내야진이 워낙 두껍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은 류지혁의 수비력 하나만으로 김재호의 백업 유격수로 분류한 상태다.

류지혁의 두 차례 호수비는 1군 경기에 처음으로 선발 출전한 선수의 플레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알고보니 3루수 허경민과 2루수 오재원의 격려가 있었다. 류지혁은 "경민이 형이 경기 전부터 계속 말을 걸어줬다. 야구 얘기도 했고, 시시콜콜한 다른 얘기도 했다.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그랬던 것 같다"라고 고마워했다. 오재원을 두고서는 "그 수비(2회말) 이후 잘 했다고 격려해줬다"라고 했다. 실제 오재원이 류지혁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류지혁은 "첫 선발출전이라 긴장했다. 그래도 내가 할 것만 제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경민이 형이 건방지게 하라고 했다. (김)재호 형도 긴장하지 말고 하던대로 하라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긴장을 풀자 실력이 나왔다. 그는 "글러브 토스는 나도 모르게 했다"라고 웃었다.

▲알고 보니 청소년대표 출신

류지혁은 청소년대표 출신이다. 2011년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주전 3루수로 출전, 한국의 준우승에 일조했다. 류지혁은 "난 3루수였고 구자욱(삼성)이 1루수, 박민우(NC)가 2루수, 하주석(한화)이 유격수였다"라고 회상했다.

이들은 매년 12월 사석에서 모이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류지혁은 "작년까지는 한현희(넥센), 변진수(경찰청)가 많이 샀다. 구자욱이 떴으니 앞으로 많이 사길 바란다"라고 웃었다. 당시 멤버들 중 현재 각 팀 주축으로 자리매김한 케이스가 많다. 반면 류지혁은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진다.

그래도 장점인 수비력으로 어필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류지혁은 "지금도 수비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더 못했다"라고 했다. 이어 "프로 입단 후 수비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올 시즌에도 경기 전에 일찍 나와서 강석천 수비코치님에게 펑고를 많이 받는다"라고 털어놨다. 청소년대표도, 호수비도 그냥 이뤄진 건 아니었다.

▲반쪽선수라는 말 듣기 싫다

류지혁은 "반쪽자리 선수라는 말을 듣기 싫다"라고 했다. 지금은 수비 전문 백업요원으로 뛰는 것을 받아들인다.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 특히 타격은 약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계속 이대로 뛸 수는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앞으로는 타격 연습도 많이 할 것이다. 계속 준비하다 보면 좋아지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김태형 감독도 "아직은 경험을 쌓고 몸에 힘이 붙어야 한다"라고 했다.

류지혁은 "1군과 2군은 차이가 있다. 2군에선 경기에 많이 나가긴 하는데 130km대 중, 후반의 볼을 많이 보는 편이다. 좋은 공을 많이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이어 "1군에선 경기에 자주 나가지 못해도 150km에 가까운 빠른 볼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그래서 2군보다는 1군에 붙어있는 게 좋다"라고 했다.

류지혁은 데뷔 후 첫 선발출전 경기서 안타 1개를 쳤다. 그에겐 호수비만큼 소중하다. 류지혁의 진화는 곧 두산 백업요원의 경쟁력 강화를 의미한다.

[류지혁.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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